쿠에사 일기

지금 잡으려고 드는 OR팀의, 모 케릭터의 여행일기. 플레이가 시작되기 조금 전의 부분.
 
 
네 가지 언어를 번갈아서 사용해서 작성한다. 어떤 글이든지 억지로라도 자꾸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까먹기 때문. 덕분에 네 언어 모두 현지인 수준으로 멋들어지게 쓸 수 있다. 다만 입으로 유창하게 말 하는 것은 세가지밖에 되지 않는다. 세이지어는 거의 사라진 언어이기 때문.

계속 종이를 추가해서 가죽끈으로 꿰는 방식의 다소 구식의 책. 가죽끈 묶음은 또 따로 하나의 철 고리에 이어지기 때문에, 종이 추가를 위해서 책 전체를 흩어야 할 필요는 없다. 일지의 사이즈는 상당히 괴물급. 이모저모 추가되다보니... 표지의 크기도 큰걸로 바뀌었고, 종이의 크기도 변화했다. 특유의 리필 방식 때문에 종이의 크기가 조금 다르기도 하다.
 
여행하면서 새롭게 얻은 정보나 지식은 정보란이라 부르는 묶음에 분류하고, 다른 분류인 일기란에 부정기적으로 일기를 쓴다. 여행이 알찰수록 텀이 줄어드는 듯 하다.
 
 

 

 

 

 

 

 

 

 

 

 

 

 

x월 x일 북 제국어로 쓰여져 있다.

 

상행위에 대해서 기술이라 부를 정도로 거창한 능력은 내겐 없지만, 그래도 오래 떠돈 덕분에 기본적인 밀고 당김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덕분에 거의 심심풀이로 끼어든 사금 채취로 생각보다는 조금 많은 돈을 벌었다. 물론 끽해야 청소년 용돈 정도지만, 나한텐 이 정도라도 무시할 수 없다. 여비는 말 그대로 연료다. 여비가 떨어지면 정상적인 여행은 불가능해진다. 동전 몇 푼이라도 존재한다면 나는 다음 마을에서 식사를 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발걸음을 옮길 수 있다. 덕분에 오래간만에 여장을 꾸리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로 한다. 반년이나 머물렀던 곳이지만 별 미련은 없었다.

 

 

x월 x일 공국 공용어로 쓰여져 있다.

 

반년이나 한 자리에서 처박힌 터라, 이번에는 최대한 돈을 벌면서 여행을 하고 싶었다. 여비가 떨어지니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안 들더라. 하지만 나에겐 나서서 돈을 벌만한 편한 재주는 없었다. 물론 내가 무능력하다는 건 아니다. 무능력하다면 애초부터 나 같은 계집애가 혼자 이 세상에 우두커니 떨어져서 살아갈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는가. 하지만 가끔은 나도 좀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다. 하지만 편하게 있으면 또 다시 훌쩍 떠나고 싶어지니, 이런 날 누가 말려.

 

 

x월 x일 -세이지어로 쓰여져 있다.

 

유랑 악사라고 주장하는 이상한 청년과 마주쳤다. 이름을 말했지만, 나의 일지에 내 손으로 써넣고 싶지 않을 정도로 시대착오적이고도 낮 뜨거운 이름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여행을 하면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라면 저 정도가 최선이 아닐까. 많이 버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쉽게 버는 것이 중요한 거니까. 그 청년은 결국 밥 한끼 얻어먹고 가버렸다. 노래는 좀 잘 불렀지만, 솔직히 홀몸으로 여행하는 소녀에게 식사 한 끼를 대접 받아야 정도로 훌륭한 것은 아니었다. 나와 동행하고 싶은 모양이었지만, 늘 그렇듯이 거절했다. 기본적으로 그런 제의는 거절하는 것이 당연한데다가 말 끝마다 신비한 소녀 운운하는 것도 맘에 안 들었다. 이상한 사람이 신비하다 여기는 사람이라면 그건 도대체 얼마나 이상하다는 거야? 난 평범하진 않지만 이상하다고 불릴 정도는 아니라고 믿고 있지만 별 설득력은 없군. 으아아아우우 여기서 오늘의 일지 끝.

 

 

x월 x일 -이스트어로 쓰여져 있다.

 

수통의 물맛이 어쩐지 비릿해졌다. 이래서 여행을 할 때는 맥주가 좋다. 새로 물을 떠야 하지만 물 찾고 뜨러 가기가 귀찮은 터라, 더 상태가 나빠지기 전에 전부 마셔버리고 물배가 출렁출렁. 대충 길가의 약초라도 뜯어넣어서 살짝 끓여먹으면 간단하겠지만, 난 뜨거운 건 잘 못 먹잖아.

 

 

x월 x일 북 제국어로 쓰여져 있다.

 

와본 기억이 없는 마을이 있었다. 그것도 한창 진행형인, 북적북적한 마을이었다. 간만에 정보란에 추가할 것이 많다. 멋집은 필요 없지만 맛집은 필수. 최대한 정보를 모아봐야겠다. 며칠째 일기 작성이 뜸했다. 일기는 매일 작성해야 하지만 종이도 귀하고 내 일지는 보통 사람이 지닐 그것들에 비하면 너무 몬스터급으로 덩치가 큰 터라 펼치기가 겁난다. 내가 이 일지를 맨 처음 만들었던 그 순간이 기억 난다면 잠시 웃을 수 있을 텐데, 머리를 굴릴수록 괴롭기만 하다. 이 괴로움을 달래줄 맛있는 음식점이 어디 있을까? 그런데 문뜩 생각나서 주머니를 뒤적이니 지갑사정이 맛난 거 팍팍 먹기엔 손이 떨릴 정도로 형편없군. 아아 우울하다 우울해.

 

 

x월 x일 -공국 공용어로 쓰여져 있다.

 


분명 눈에 띄는 외모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이런 저런 도움을 주는 건 고맙다. 하지만 난 애초부터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는 행위를 별로 좋아하는 것 같지 않다. 더군다나 도움을 받기 시작하면 끝도 없어지는 경우를 몇 번 봐버렸기 때문에 나는 타인의 호의가 거북하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세상을 혼자서 떠도는 소녀라는 존재에게 타인의 도움이라는 것은 생존에 있어서 필수 불가결의 것이다. 난 언제나 적당히라는 단어를 잊어선 안 된다. 하지만 가끔 좀 불공평하다고 생각은 한다. 타고난 것에 자동적으로 딸려오는 좋은 점들은 애써 거리를 둬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자동적으로 딸려오는 나쁜 점까지 막아주지는 않는다는 점이 말이다. 뭐 그래도 늘 그렇듯이, 다른 누군가가 도와줘서 곤란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 세상은 분명 어렵긴 해도 그럭저럭 살만하다. 적절한 난이도야.

 

 

x월 x일 세이지어로 쓰여져 있다.

 

내킨 김에 일지에서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요리 레시피 부분을 대부분 버려버렸다. 덕분에 너무 빵빵하게 부풀어 올랐던 일지가 그럭저럭 수습이 되었다. 그런데 이러고 나니 또 허전한 마음이 든다. 모처럼 이니 정보란에 어제 떠나왔던 새로운 마을에 대해서라도 좀 더 적어둘까. 하지만 또 이렇게 잡다한 정보까지 전부 적다간 또 다시 일지가 배게 대용으로 써도 괜찮을 만큼 부풀어버릴 거고… 늘 그렇듯이 이럴 때마다 ‘잊어버린 내용’이 적힌 수많은 부분을 일지에서 빼버리고 싶은 욕구가 끓어오르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참는다. 아니, 참을 것도 없이 난 그럴 수 없다. 난 도마뱀처럼 자신의 꼬리를 잘라내면서까지 살아갈 자신이 없다. 비록 그 꼬리가 쇠사슬에 둘둘 묶여서 미동조차 할 수 없는 속박이라 해도. 어제의 마을에 대한 것도 언젠가는 내 기억 속에선 사라져버리고 일지에만 남게 되겠지. 난 그게 싫지만 벌써 익숙해져 버렸다. 내가 쓴 것이 분명하지만 기억은 나지 않는 수많은 글들을 볼 때마다 기분이 나쁘다. 그렇게 따지면 내가 쓰는 모든 일지의 내용은, 미래의 나에게 예비 된 불쾌감일지도 모르겠다.

 

 

x월 x일 -이스트어로 쓰여져 있다

 

노상 느끼는 것이지만 세상은 세상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기엔 너무나 아쉬운 다채로움을 가지고 있다. 홀로 여행하는 어린 소녀에게 하룻밤 잠자리를 마련해주는 순박한 시골 아주머니와, 그 소녀의 잠자리에 난입해서 찍어 누르려 드는 시골 아주머니의 아들. 물론 집안에 남자가 있다는 걸 안 순간부터 미리 대비하고 있던 덕분에 깔리는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소란 피우지 않고 조용히 집을 나왔다. 급한 와중에 미리 꾸려둔 내 짐만 집어 들고 바로 튀어나온 터라 그 집에서 빌린 잠옷을 그대로 입고 나와버린 게 좀 걱정이다. 죽은 딸의 잠옷이 자신의 아들에 의해 찢겨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 아주머니는 어떤 기분이 들지 생각해보니 눈 앞이 조금 깜깜해졌다. 그 멍청이, 기절했다고 그대로 퍼지지 말고 쥐고 있을 잠옷 조각 정도는 한 구석으로 밀어둘 정도의 주변머리 정도는 갖고 있다면 좋겠다. 여튼 그 덕분에 숲에서 몰래 옷을 갈아입었다. 해 뜨기 전이라 주변이 어둑하긴 했지만 엄청 부끄러웠다. 그렇게 벗어낸 잠옷은 어쩔 수 없이 잘 개켜서 가방 안에 넣어두었다. 앞섭이 찢어지긴 했지만 못 입을 정도는 아니고, 아주머니를 생각하면 버릴 수는 없다. 딸 같다고 했으니 딸 같은 나라도 대신 입어야지 별 수 있나. 날 진짜 딸로 둔 사람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사실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x월 x일 -북 제국어로 쓰여져 있다


어쩐지 일단 노숙을 한번 하게 되면 계속해서 하게 되는 것 같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지만. 난 어느쪽도 마음에 든다. 하지만 노숙은 일지를 작성하는 게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지금은 그나마 달빛이 밝아서 어느 정도 쓸 수 있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별로 길게 쓰고 싶은 생각이 안 든다. 오늘은 이만 끝. 에휴 모처럼 잠옷이 생겼는데 입고 자고 싶다. 좀 찢어졌으면 어때.

 

 

x월 x일 -공국 공용어로 쓰여져 있다

 

오늘은 일지의 정보란을 정리하려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하다가 포기했다. 언제나 정리하려고 들 때마다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 철자대로 하자니 무슨 언어의 철자 순으로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차피 이 일지를 볼 사람은 나밖에 없잖는가. 난 기억력이 상당히 좋다. 어디쯤에 무슨 이야기가 있는지 정도는 쓴 장본인인 내가 완전히 외우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처럼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정리하던 그 와중에 천 육백 사십 페이지 근방에서 발견한 정체불명의 피얼룩을 발견했는데, 왜 일지에 피 얼룩이 있어야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근처 페이지를 읽어봐도 알 수가 없었다. 기억력은 좋은데 기억은 자꾸 잃어가니, 이것도 모순이라면 모순이다. 내가 어쩔 방도는 없는 모양이지만.

 

 

x월 x일 -세이지어로 쓰여져 있다

 

상인 무리를 만났다. 언제나 그렇듯이 딱히 목적지도 없던 나는 상단에 합류했다. 지미라는 상인이 자신의 수레에 태워주려고 했지만 거절했다. 두 다리로 걷는 것은 싫어하지 않는데다가, 내가 남의 호의를 받아주기 시작하면 그들은(특히 남성이라면) 기둥뿌리까지 뽑아다 바치게 된다. 그건 나와 상대, 양측 모두에게 큰 부담이다. 그래도 식사대접은 받았다. 한동안 혼자 노숙하다가 먹은 제대로 된 식사라 참 맛있었다.

 

 

x월 x일 -이스트어로 쓰여져 있다.

 

이들은 큰 도시로 간다고 해서 해어지기로 했다. 1년에 한번씩 자신들의 마을에서 생산한 이런 저런걸 주변의 마을끼리 함께 몰아 가서 팔고 온다고 했다. 어쩐지 전문적인 상단이라는 느낌은 나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다. 이들에게 있어서 이 물건 팔러 가는 일이야말로 1년에 한번씩 있는 축제라고 하는 것 같았다. 무사귀환을 빌며 즐기고, 무사귀환을 축하하며 즐긴다고 한다. 지미는 어차피 목적 없이 여행을 한다면 이대로 갔다가 같이 돌아가서 축제를 즐기자고 했다. 하지만 어제도 적었지만 내가 남의 호의를 받기 시작하면 그건 서로에게 큰 부담이 된다. 그래서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하고 일행을 떠났다. 이토록 나는 좋은 사람과 지내기도 어렵고, 나쁜 사람과 지내기도 어려운 것 같다. 어제 썼던 세이지어로 쓴 일지에 공국 공용어의 뉘앙스가 섞여버렸는데, 딱히 고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세이지어로 말을 하는 건 거의 까먹어버린 것 같다. 이 세상에 세이지어를 쓰는 사람은 얼마나 남았을까? 정말 혹시 혹시 나 하나뿐이라던가 그런 건 아닐까?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불안한 컵에 담긴 유일무이한 액체를 바라보는 기분이라 엄청나게 불안하다. 근데 이런 말을 나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들으면 화가 나겠지… 스스로도 화가 치미는데. 대체 누가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불안한 컵이냐. 당연히 내가. 우씨 일기 끝.

 

 

x월 x일 -북 제국어로 써있다.

 

또 다시 기억을 하나 잃어버렸다. 참 좋아하던 음식이라는 것 말고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맛도 이름도 모양도. 일지를 뒤저보면 분명 찾을 수 있겠지만 늘 그렇듯이 별로 그럴 기분이 안 든다. 하지만 그 대신에 양이 참 맛있어서 좋았다. 털도 푹신하고, 양젖도 마실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다. 여러모로 편리한 녀석들이다. 양 하나를 키우면 옷도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얻을 수 있는 걸까? 하지만 여행하면서 키우기는 힘들겠지. 말이라면 타고 다니기라도 할 텐데... 하지만 양을 타고 다니면 푹신푹신해서 또 좋지 않을까. 고민해볼 문제다. 식사를 대접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양털 팔러 가는 일행에 끼게 되었다. 난 기본적으로는 은혜나 원한에 둔감하지만, 뭔가 ~~를 했으니 ~~를 해야하는 상황엔 약한 것 같다. 내가 장사를 한다면 정말 정직하게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물론 밑천도 나이도 모자라지요. 혹시 물장사라면 좀 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까지 돈을 벌어야 할 이유가 생긴다면, 난 그 이유를 얼마든지 내팽개치고 숲으로라도 들어갈 거다. 숲은 인간의 장소만큼 풍족하진 않아도, 인간의 장소만큼 매정하지도 않다. 물론 더운 물로 목욕은 할 수 없게 되겠지만, 정 하고 싶으면 온천이라도 찾아보지 뭐. 근데 어쩐지 전원생활을 꿈꾸는 노년 같아서 조금 싫은걸.

 

 

 

 

 

by 달지않은고구마 | 2005/11/15 07:49 | | 트랙백 | 덧글(9)

트랙백 주소 : http://goguma.egloos.com/tb/193265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알바트로스K at 2005/11/15 10:21
난 또 4언어래서 한 영 중 일 정도인줄 알았 (...)
Commented by 유피테르 at 2005/11/15 13:47
예 저도 알바님과 같은 생각을(..)
Commented by jenu at 2005/11/15 14:10
저도(...)
Commented by 이리히 at 2005/11/15 14:35
아 저도 [..]
Commented by 로교 at 2005/11/15 15:15
링크!!
Commented by 지조자 at 2005/11/15 15:53
저는 한 영 일 스페인어로...ㅡㅡ;;
Commented by 메르츠키엘 at 2005/11/15 16:15
리플이 더웃겨
Commented by 아루시엘 at 2005/11/15 16:15
나도[..]
Commented by 달지않은고구마 at 2005/11/15 17:13
에휴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