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2월 24일
[영원의 밤]1권- 검의 마녀 -3-
[영원의 밤]1권- 검의 마녀 -1-
[영원의 밤]1권- 검의 마녀 -2-
어지러울 정도로 달빛이 밝은 만월의 밤. 한밤의 습격자를 멸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기다리고 있던 늙은 마녀로서도 이 상황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머리를 맞아서 그런지 뇌가 울고 있었다. 눈앞이 희미했다. 지팡이를 짚고서 일어나는 마녀의 몸이 휘청거렸다. 어느새 다가선 소녀가 흔들리는 늙은 마녀의 몸을 다정하게 잡아주며 말했다.
“나이를 먹었군 텔로미어. 서글픈 일이다.”
그 목소리는 마치 설탕처럼 달았다. 마녀는 눈앞의 소녀를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한밤중에 습격을 해 와서 집을 파괴하고 자신을 공격했으면서 지금은 이렇게 친절하게 자신을 부축했다. 아마도 이 소녀는 저 멀리 윗치 스쿨의 입구 쪽에서 들리는 괴성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었다.
늙은 마녀는 울리는 머리를 필사적으로 식히며, 흐려진 시야로 소녀를 거듭 확인했다. 소녀는 자신에게 애매한 미소를 억지로 지어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억지스러운 미소는 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밝게 웃고 싶은데, 그럴 능력이 없어서 쥐어짜지는 괴로운 미소였다. 여기 있는 이 소녀가 마녀 자신이 아는 그 아이라면 이런 웃음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었다. 녹티스는 언제나 조용히, 표정 없이 마음속으로 울고 웃는 아이였으니까. 그것은 그 아이가 자신을 무장시키기 시작한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늙은 마녀는 소녀에게 자신의 의문을 건넸다.
“…넌 누구지?”
아까의 공격에 의해 늙은 마녀는 아직도 머리가 울렸다. 소녀의 정체는 수수께끼였다. 소녀는 외견으로 봐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마술에 대한 이해를 지니고 있었다. 난데없이 밤에 나타나서 윗치 스쿨을 습격했다. 늙은 마녀의 입장에서는 적이여야만 했다.
하지만, 늙은 마녀는 눈앞의 상대가 자신에게 적의를 지웠다는 사실이 너무나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이유는 그녀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여기 이 소녀가 이 소란의 원흉이라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늙은 마녀는 눈앞의 소녀를 적대하고 싶지 않았다. 늙은 마녀는, 흔들리는 의식을 쥐어 잡으며 소녀의 얼굴을 만졌다. 이 아이는 녹티스가 아니었지만, 녹티스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아이의 정체는 알 수가 없었지만, 이리도 친근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평화도 잠시뿐이었다. 늙은 마녀는 소녀가 자신을 부축하기 위해서 붙잡고 있던 접촉면에서 알 수 없는 박탈감을 느꼈다. 머리를 울리고 있던 것은 타격에 의한 후유증이 아닌, 그 일순간에 침투받은 마술적인 저주였다. 그 저주는 늙은 마녀의 전신을 혈액처럼 한 바퀴 돈 후 다시 소녀의 작은 몸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녀는 점차 몸의 자유와 생각의 자유를 빼앗기고 있었다.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늙은 마녀는 사라지기 직전의 모든 것을 기울여서 소녀가 하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모든 것을 수수께끼로 두고, 이대로 사라질 수는 없었다.
“넌… 누구지? 확실히 녹티스는 아니야. 넌 대체 누구지?”
소녀는 오히려 질문을 던지는 늙은 마녀에게 되물어왔다.
“내가 묻고 싶군. 녹티스가 도대체 누구지? 지금의 내 모습은 그 녹티스라는 녀석과 닮아있나? 하지만 뭐… 녹티스건 텔로미어건 상관없겠지. 얼마 남지 않았겠지만 네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도록 하게.”
소녀가 순간 언급한 텔로미어는 늙은 마녀 자신의 이름이었다. 더더욱 혼란스러워진 늙은 마녀의 귀로 소녀의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다시 들어왔다. 소녀의 이번 말은 모든 혼란을 한순간에 얼려버리는 효과가 있었다.
“아, 그렇지. 텔로미어도 지금은 네 이름이 되었겠군. 굳이 지금의 날 지칭하자면 이름없는 자 정도로 해둘까.”
마녀는 점차 통제를 벗어나는 육체의 모든 힘을 기울여서 입을 움직였다.
“설마,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어….”
“자매 상봉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오늘은 용건은 그게 아니지. 오늘은 네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가져가려고 왔다. 영원히 잘 시간이야, 텔로미어.”
분명 사랑스러운 목소리였지만, 어쩐지 자조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어조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늙은 마녀의 안색은 아까보다도 더더욱 나빠지고 있었다. 창백한 달빛 아래에서 더더욱 창백함을 띄어 가는 늙은 마녀의 얼굴빛은 그 자체로도 음울한 느낌을 자아냈다. 마치 죽음과 같은.
“처음부터 네가 본격적으로 나왔다면 마술 발동을 위한 스태프도 없고, 하다못해 이름조차 없는 지금의 나는 꽤 고전했었겠지. 덕분에 편하게 끝낼 수 있었다. 감사한다, 텔로미어.”
절망과 의문을 담아서 늙은 마녀는 마지막 모든 힘을 모아서 소녀를 불렀다.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도 상관없다고 했으니 그렇게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그녀의 유언이 된다. 모든 의미로 마지막 기회였다.
“…언니, 도대체 어떻게, 왜?”
마지막까지 의문을 남기고 늙은 마녀는 숨이 끊어졌다. 그래도 소녀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소녀는 쓰디쓰게 혀를 차며 말했다.
“쯧, 역시 다른 칭호는 몰라도, 언니라고 만큼은 부르지 말라고 했어야 했었군.”
소녀는 쓴웃음을 애써 지으려고 노력하다가, 이제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얼굴을 굳혔다. 다른 표정은 몰라도 좋은 웃음만큼은 짓기가 힘들었다. 소녀가 지을 수 있는 표정은 조소, 경멸, 불쾌함, 분노 정도가 고작이었으니까.
“그럼 이 이상의 잡담은 나중에. 지옥에서.”
소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이제는 일어설 수 없는 늙은 여동생의 식어가는 몸을 껴안았다. 바닥에 떨어진 녹보석의 지팡이도 천천히 빛을 잃어갔다. 비록 그 죽음의 원인이 그녀 본인일 지라도, 죽어버린 자신의 늙은 여동생에게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는 소녀의 모습은, 어딘지 모를 숭고한 느낌이 있었다.
짐승의 몸에서 비롯된 그림자의 고기가 사방으로 촉수를 뻗어나갔다. 쏟아지는 탄환과 마력에 의해 산산조각나면서도 굴하지 않고 나아가는 촉수들이 마침내 사람들에게 닿았다. 그 촉수들은 상대의 그림자에 닿자마자 그 안으로 스며들어갔고다. 당한 이들은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쉽게 파악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도대체 저 괴물은 나에게 뭘 한 거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얻는 대가는 공포였다.
그들은 자신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한 또 하나의 짐승을 마주해야 했다. 그들의 모체보다는 작았지만, 그 크기는 그림자의 주인인 자신들의 그것과 거의 같아 보였다. 더군다나 한 사람당 공평하게 한 마리씩.
그림자의 짐승들이 그 그림자의 주인에게 웃어 보인다. 비명이 울렸다. 마녀들에겐 공포가 뇌를 얼리고 마술의 구현을 차단했다. 아이언 스태프에서 파견된 용병들은 자신의 그림자에서 비롯된 괴물에게 총을 난사했지만, 그림자 괴물에게 총알이 박히면 그 총상은 그림자의 주인인 자신에게 생겨났다. 이리하여 용병들의 대다수는 자신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고, 그나마 살아남은 이들도 연이어진 그림자 괴물의 습격에 살아남을 수 없었다. 이렇게 용병들은 순식간에 궤멸당했다. 마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빠르게 도망쳐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림자 역시 그와 같은 빠르기로 따라온다. 반격하면 그 반격의 상처는 자신에게 돌아온다. 가만히 있으면 역시 그림자 괴물에게 산 채로 뜯어 먹힌다. 자신의 그림자가 공격해오는데 그 자신은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었다. 모든 선택지가 죽음으로 이어진다. 절망의 지옥이다.
그 한순간의 공격에 살아남은 이들은, 마침 건물의 그늘에 있었던 덕분에 자신의 그림자가 없었던 소수뿐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안전하지는 않았다. 일말의 본의나 동의도 없이 눈앞에서 펼쳐진 지옥의 관람자들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이형의 마물에 의한 일방적인 대학살극은, 보는 이들의 정신을 병들게 하기 충분했다. 머리가 사라진 뱀이 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타 죽어버리듯, 그들은 그렇게 잃어버린 정신을 따라서 생명조차 버리려 하고 있었다.
소수의 생존자를 향해서 주인의 몸을 뜯어먹은 그림자의 괴물들이 덤벼들기 시작했다. 정신이 한순간에 현실감을 잃고 악몽으로 추락했다. 뭐, 외로운 결말은 아닐 것이다. 잠시 후면 육신의 생명도 뒤를 따를 테니까.
잠시의 시간이 흘렀다. 사내 외에 살아있는 존재는 두세 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 외의 사람들은 전부 바닥의 육편이 되어 있었다.
“이거 이거, 이렇게 지저분하게 먹다니. 이러다가 엄마한테 혼나겠는데.”
어느덧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사내가 바닥에 떨어진 코트를 줍고는, 그 자신이 만들어 낸 지옥 같은 광경을 감상하며 짖어댔다. 그가 발을 옮기자, 그에게 밟힌 살점들이 기묘한 소리를 내며 으깨졌다. 그림자의 괴물들이 바닥에 난자한 살점들을 깨끗하고도 탐욕스럽게 핥으며 사내의 그림자로 스며들었다.
“휘유, 무서워 뒤질 뻔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별거 아니잖아? 그 계집애, 쓸데없이 겁만 주기는.”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은 전원 마녀들이었다. 마학적인 지식으로 눈앞의 현상에 깊게 현혹되지 않은 덕분에, 자신에게 할당된 그림자 괴물을 물리치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사내가 만들어낸 그림자 괴물은, 일단 그림자 괴물을 물리친 이들은 건드리지 않는다. 일종의 시험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남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사내는 눈앞에 있는 소수의 생존자들에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젊은 마녀가 필사적인 태도로 검붉은 액체가 담긴 시약병을 던졌다. 하지만, 사내는 일격을 살짝 피한 후 바로 뺨을 후려갈겼다. 그 마녀는 사내에게 미약한 타격도 주지 못하고서, 그대로 목뼈가 돌아가 버렸다.
그는 이 소리가 가장 좋았다. 대리체험이랄까. 아무리 갑갑하더라도 자신의 목을 비틀 수는 없잖은가? 더군다나 사내 자신의 목은 워낙 질겨서 잘 안 비틀어지기도 하고 말이다. 사내의 뒤로 병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그쪽으론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남은 두 명은 학생들이었다. 사내는 아직 어린 소녀들이 자신의 그림자 짐승들에게서 살아남은 것을 보고서 속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그림자 짐승이 못 죽이는 상대는 직접 가서 죽이면 된다.
“이봐, 아가씨들. 까꿍? 하하하. 살아있어? 과연 마녀라는 건가. 대단하군! 아가씨들 몇 살이지? 어린 나이에 그림자 짐승들에게 살아남다니! 정말 대단하군! 과연 윗치 스쿨이군! 훌륭하군! 멋지군!”
사내의 걸음은 별로 빠르진 않았지만, 이미 아이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인간의 모습이나 개의 모습이나 별 차이가 없는 짐승 같은 사내 손에 머리를 잡힌 소녀의 두 눈이 공포에 질렸다.
[영원의 밤]1권- 검의 마녀 -2-
어지러울 정도로 달빛이 밝은 만월의 밤. 한밤의 습격자를 멸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서 기다리고 있던 늙은 마녀로서도 이 상황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머리를 맞아서 그런지 뇌가 울고 있었다. 눈앞이 희미했다. 지팡이를 짚고서 일어나는 마녀의 몸이 휘청거렸다. 어느새 다가선 소녀가 흔들리는 늙은 마녀의 몸을 다정하게 잡아주며 말했다.
“나이를 먹었군 텔로미어. 서글픈 일이다.”
그 목소리는 마치 설탕처럼 달았다. 마녀는 눈앞의 소녀를 도무지 종잡을 수 없었다. 한밤중에 습격을 해 와서 집을 파괴하고 자신을 공격했으면서 지금은 이렇게 친절하게 자신을 부축했다. 아마도 이 소녀는 저 멀리 윗치 스쿨의 입구 쪽에서 들리는 괴성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었다.
늙은 마녀는 울리는 머리를 필사적으로 식히며, 흐려진 시야로 소녀를 거듭 확인했다. 소녀는 자신에게 애매한 미소를 억지로 지어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억지스러운 미소는 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밝게 웃고 싶은데, 그럴 능력이 없어서 쥐어짜지는 괴로운 미소였다. 여기 있는 이 소녀가 마녀 자신이 아는 그 아이라면 이런 웃음을 보이지는 않을 것이었다. 녹티스는 언제나 조용히, 표정 없이 마음속으로 울고 웃는 아이였으니까. 그것은 그 아이가 자신을 무장시키기 시작한 이후에도 변하지 않았다. 늙은 마녀는 소녀에게 자신의 의문을 건넸다.
“…넌 누구지?”
아까의 공격에 의해 늙은 마녀는 아직도 머리가 울렸다. 소녀의 정체는 수수께끼였다. 소녀는 외견으로 봐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마술에 대한 이해를 지니고 있었다. 난데없이 밤에 나타나서 윗치 스쿨을 습격했다. 늙은 마녀의 입장에서는 적이여야만 했다.
하지만, 늙은 마녀는 눈앞의 상대가 자신에게 적의를 지웠다는 사실이 너무나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이유는 그녀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여기 이 소녀가 이 소란의 원흉이라는 것은 분명했지만 그런데도 불구하고 늙은 마녀는 눈앞의 소녀를 적대하고 싶지 않았다. 늙은 마녀는, 흔들리는 의식을 쥐어 잡으며 소녀의 얼굴을 만졌다. 이 아이는 녹티스가 아니었지만, 녹티스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아이의 정체는 알 수가 없었지만, 이리도 친근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평화도 잠시뿐이었다. 늙은 마녀는 소녀가 자신을 부축하기 위해서 붙잡고 있던 접촉면에서 알 수 없는 박탈감을 느꼈다. 머리를 울리고 있던 것은 타격에 의한 후유증이 아닌, 그 일순간에 침투받은 마술적인 저주였다. 그 저주는 늙은 마녀의 전신을 혈액처럼 한 바퀴 돈 후 다시 소녀의 작은 몸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마녀는 점차 몸의 자유와 생각의 자유를 빼앗기고 있었다.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늙은 마녀는 사라지기 직전의 모든 것을 기울여서 소녀가 하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모든 것을 수수께끼로 두고, 이대로 사라질 수는 없었다.
“넌… 누구지? 확실히 녹티스는 아니야. 넌 대체 누구지?”
소녀는 오히려 질문을 던지는 늙은 마녀에게 되물어왔다.
“내가 묻고 싶군. 녹티스가 도대체 누구지? 지금의 내 모습은 그 녹티스라는 녀석과 닮아있나? 하지만 뭐… 녹티스건 텔로미어건 상관없겠지. 얼마 남지 않았겠지만 네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도록 하게.”
소녀가 순간 언급한 텔로미어는 늙은 마녀 자신의 이름이었다. 더더욱 혼란스러워진 늙은 마녀의 귀로 소녀의 사랑스러운 목소리가 다시 들어왔다. 소녀의 이번 말은 모든 혼란을 한순간에 얼려버리는 효과가 있었다.
“아, 그렇지. 텔로미어도 지금은 네 이름이 되었겠군. 굳이 지금의 날 지칭하자면 이름없는 자 정도로 해둘까.”
마녀는 점차 통제를 벗어나는 육체의 모든 힘을 기울여서 입을 움직였다.
“설마,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어….”
“자매 상봉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오늘은 용건은 그게 아니지. 오늘은 네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가져가려고 왔다. 영원히 잘 시간이야, 텔로미어.”
분명 사랑스러운 목소리였지만, 어쩐지 자조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어조였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늙은 마녀의 안색은 아까보다도 더더욱 나빠지고 있었다. 창백한 달빛 아래에서 더더욱 창백함을 띄어 가는 늙은 마녀의 얼굴빛은 그 자체로도 음울한 느낌을 자아냈다. 마치 죽음과 같은.
“처음부터 네가 본격적으로 나왔다면 마술 발동을 위한 스태프도 없고, 하다못해 이름조차 없는 지금의 나는 꽤 고전했었겠지. 덕분에 편하게 끝낼 수 있었다. 감사한다, 텔로미어.”
절망과 의문을 담아서 늙은 마녀는 마지막 모든 힘을 모아서 소녀를 불렀다.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도 상관없다고 했으니 그렇게 불러도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그녀의 유언이 된다. 모든 의미로 마지막 기회였다.
“…언니, 도대체 어떻게, 왜?”
마지막까지 의문을 남기고 늙은 마녀는 숨이 끊어졌다. 그래도 소녀는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소녀는 쓰디쓰게 혀를 차며 말했다.
“쯧, 역시 다른 칭호는 몰라도, 언니라고 만큼은 부르지 말라고 했어야 했었군.”
소녀는 쓴웃음을 애써 지으려고 노력하다가, 이제 억지로 웃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시 얼굴을 굳혔다. 다른 표정은 몰라도 좋은 웃음만큼은 짓기가 힘들었다. 소녀가 지을 수 있는 표정은 조소, 경멸, 불쾌함, 분노 정도가 고작이었으니까.
“그럼 이 이상의 잡담은 나중에. 지옥에서.”
소녀는 얼굴을 찡그리며 이제는 일어설 수 없는 늙은 여동생의 식어가는 몸을 껴안았다. 바닥에 떨어진 녹보석의 지팡이도 천천히 빛을 잃어갔다. 비록 그 죽음의 원인이 그녀 본인일 지라도, 죽어버린 자신의 늙은 여동생에게 두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는 소녀의 모습은, 어딘지 모를 숭고한 느낌이 있었다.
짐승의 몸에서 비롯된 그림자의 고기가 사방으로 촉수를 뻗어나갔다. 쏟아지는 탄환과 마력에 의해 산산조각나면서도 굴하지 않고 나아가는 촉수들이 마침내 사람들에게 닿았다. 그 촉수들은 상대의 그림자에 닿자마자 그 안으로 스며들어갔고다. 당한 이들은 순간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쉽게 파악을 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도대체 저 괴물은 나에게 뭘 한 거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얻는 대가는 공포였다.
그들은 자신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오기 시작한 또 하나의 짐승을 마주해야 했다. 그들의 모체보다는 작았지만, 그 크기는 그림자의 주인인 자신들의 그것과 거의 같아 보였다. 더군다나 한 사람당 공평하게 한 마리씩.
그림자의 짐승들이 그 그림자의 주인에게 웃어 보인다. 비명이 울렸다. 마녀들에겐 공포가 뇌를 얼리고 마술의 구현을 차단했다. 아이언 스태프에서 파견된 용병들은 자신의 그림자에서 비롯된 괴물에게 총을 난사했지만, 그림자 괴물에게 총알이 박히면 그 총상은 그림자의 주인인 자신에게 생겨났다. 이리하여 용병들의 대다수는 자신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고, 그나마 살아남은 이들도 연이어진 그림자 괴물의 습격에 살아남을 수 없었다. 이렇게 용병들은 순식간에 궤멸당했다. 마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빠르게 도망쳐도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림자 역시 그와 같은 빠르기로 따라온다. 반격하면 그 반격의 상처는 자신에게 돌아온다. 가만히 있으면 역시 그림자 괴물에게 산 채로 뜯어 먹힌다. 자신의 그림자가 공격해오는데 그 자신은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었다. 모든 선택지가 죽음으로 이어진다. 절망의 지옥이다.
그 한순간의 공격에 살아남은 이들은, 마침 건물의 그늘에 있었던 덕분에 자신의 그림자가 없었던 소수뿐이었다. 하지만, 그들도 안전하지는 않았다. 일말의 본의나 동의도 없이 눈앞에서 펼쳐진 지옥의 관람자들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이형의 마물에 의한 일방적인 대학살극은, 보는 이들의 정신을 병들게 하기 충분했다. 머리가 사라진 뱀이 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타 죽어버리듯, 그들은 그렇게 잃어버린 정신을 따라서 생명조차 버리려 하고 있었다.
소수의 생존자를 향해서 주인의 몸을 뜯어먹은 그림자의 괴물들이 덤벼들기 시작했다. 정신이 한순간에 현실감을 잃고 악몽으로 추락했다. 뭐, 외로운 결말은 아닐 것이다. 잠시 후면 육신의 생명도 뒤를 따를 테니까.
잠시의 시간이 흘렀다. 사내 외에 살아있는 존재는 두세 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 외의 사람들은 전부 바닥의 육편이 되어 있었다.
“이거 이거, 이렇게 지저분하게 먹다니. 이러다가 엄마한테 혼나겠는데.”
어느덧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사내가 바닥에 떨어진 코트를 줍고는, 그 자신이 만들어 낸 지옥 같은 광경을 감상하며 짖어댔다. 그가 발을 옮기자, 그에게 밟힌 살점들이 기묘한 소리를 내며 으깨졌다. 그림자의 괴물들이 바닥에 난자한 살점들을 깨끗하고도 탐욕스럽게 핥으며 사내의 그림자로 스며들었다.
“휘유, 무서워 뒤질 뻔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별거 아니잖아? 그 계집애, 쓸데없이 겁만 주기는.”
운 좋게 살아남은 이들은 전원 마녀들이었다. 마학적인 지식으로 눈앞의 현상에 깊게 현혹되지 않은 덕분에, 자신에게 할당된 그림자 괴물을 물리치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사내가 만들어낸 그림자 괴물은, 일단 그림자 괴물을 물리친 이들은 건드리지 않는다. 일종의 시험인 셈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남는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사내는 눈앞에 있는 소수의 생존자들에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젊은 마녀가 필사적인 태도로 검붉은 액체가 담긴 시약병을 던졌다. 하지만, 사내는 일격을 살짝 피한 후 바로 뺨을 후려갈겼다. 그 마녀는 사내에게 미약한 타격도 주지 못하고서, 그대로 목뼈가 돌아가 버렸다.
그는 이 소리가 가장 좋았다. 대리체험이랄까. 아무리 갑갑하더라도 자신의 목을 비틀 수는 없잖은가? 더군다나 사내 자신의 목은 워낙 질겨서 잘 안 비틀어지기도 하고 말이다. 사내의 뒤로 병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그쪽으론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남은 두 명은 학생들이었다. 사내는 아직 어린 소녀들이 자신의 그림자 짐승들에게서 살아남은 것을 보고서 속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그림자 짐승이 못 죽이는 상대는 직접 가서 죽이면 된다.
“이봐, 아가씨들. 까꿍? 하하하. 살아있어? 과연 마녀라는 건가. 대단하군! 아가씨들 몇 살이지? 어린 나이에 그림자 짐승들에게 살아남다니! 정말 대단하군! 과연 윗치 스쿨이군! 훌륭하군! 멋지군!”
사내의 걸음은 별로 빠르진 않았지만, 이미 아이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인간의 모습이나 개의 모습이나 별 차이가 없는 짐승 같은 사내 손에 머리를 잡힌 소녀의 두 눈이 공포에 질렸다.
# by | 2005/12/24 13:02 | 글 | 트랙백 | 덧글(1)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