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밤]1권- 검의 마녀 -7-

[영원의 밤]1권- 검의 마녀 -1-
[영원의 밤]1권- 검의 마녀 -2-
[영원의 밤]1권- 검의 마녀 -3-
[영원의 밤]1권- 검의 마녀 -4-
[영원의 밤]1권- 검의 마녀 -5-
[영원의 밤]1권- 검의 마녀 -6-

















오지의 숲 속에서 일련의 무리가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곳은 마도 협회의 결정에 의해서 봉인된, 고대 신전의 앞마당이었다. 봉인이란, 말은 그럴싸해도 실상은 건드려도 백해무익한 것에게 선사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특히 유적 봉인의 경우는 봉인 확인을 받는 시점에서 대부분의 단물을 전부 빨리는 것이 기본이었다. 딱히 탐사자들의 욕망 때문은 아니고, 이것은 그저 마술을 익히고 사용하는 자들의 숙명과도 같은 습관 때문이었다. 마도의 발전은 집약에서 찾아왔으니까.

즉, 봉인된 유적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봉인된 순간 알맹이는 탈탈 털린 빈 깡통과 같은 것이다. 이 신전 역시 그렇게 은폐되어 사람의 발길이 없어야만 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 빈 깡통의 앞마당이 이처럼 소란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들은 이 신전에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푸른 교복을 입은 흑발의 미소녀가 바위 위로 빠끔히 고개를 내밀었다. 나이는 그다지 많아 보이지 않는다. 소녀는 어딘지 모르게 특이한 기운이 감도는 권총을 들고 있었다. 아까부터 이쪽을 향해서 총탄이 난사 되고 있었지만 소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손에 쥔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소녀의 총탄은 정확하게 적들을 분쇄했다.

소녀는 탄창의 총탄을 전부 소모하자, 재빠르게 엄폐물 뒤로 가라앉았다. 그 반동으로 소녀의 기다란 흑발머리의 다발이 마치 웅덩이에 떨어진 물방울처럼 하얀 리본과 함께 튀어 올랐다. 바닥에 주저앉은 소녀의 등으로, 그녀가 기대고 있는 바위 위로 총탄이 맞는 충격이 드르르 울려왔다. 이곳에서 영겁의 세월을 보냈을 이 바위는 고맙게도 불평 한 마디 없이 그녀의 엄폐물이 되어주었다.

그런 소녀의 옆에 앉아있던 금발의 청년이 소녀에게 수류탄을 건네며 말했다.

“자, 여기. 그리고 붕대 좀 줘.”

소녀는 두말하지 않고 자신의 머리를 묶고 있던 하얀 리본을 풀었다. 덕분에 속박이 풀려서 폭발하듯 쏟아지는 긴 흑발을 정리하기 위해서, 소녀는 마치 동물처럼 고개를 휘휘 저었다. 소녀는 대충 말아 쥔 리본을 청년에게 건네며 수류탄을 받았다. 지금 보니 그 하얀 리본은 리본이 아니라, 이상한 마술 문자가 빽빽하게 적혀있는 붕대조각이었다.
소녀가 입을 열었다.

“있잖아, 저기 있는 저놈들은….”

그녀는 말을 하던 도중에 잠시 입으로 수류탄의 핀을 뽑았다. 잠시 기다린 후 핀이 뽑힌 수류탄을 바위 너머로 휙 집어던지고는 말을 계속 이었다.

“원류 추종자들이잖아. 흑 마녀 전멸 이후, 현시대의 최대 최고의 암적 존재들 말이야.”

-콰앙!

허공을 넘어서 소녀에게 전달된 폭발의 충격이, 그 수류탄이 정확하게 그녀가 원하던 위치에서 폭발했음을 알려주었다. 소녀는 귀를 막았던 손을 내리는 대신에 불만에 가득 찬 입을 내밀었다. 그리고 권총의 빈 탄창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왼손의 소매를 허공에 털었다. 한순간에 소매 속에서 튀어나와 소녀의 왼 손에 쥐어진 것은 총알이 가득 찬 탄창이었다. 소녀는 그 탄창을 자신의 권총에 밀어넣으며, 물에 빠진 사람이 뭍으로 나온 후 쉬어대는 급한 호흡과도 같은 기세로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런 덩치 큰 놈들의 움직임을 아이언 스태프가 알아차리지 못했다니. 뭐, 그거야 그럴 수도 있다고 치자. 하지만, 하필이면 아이언 스태프에서 벌인 작전과 놈들의 작전이 정확하게 격돌했다는 것은 대체 어느 동네 농담이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응? 우연? 장난하냐고. 차라리 산보를 하다가 운석에 얻어맞겠다.”

쏟아지듯이 밀려오는 소녀의 불평을 슬쩍 들어 넘기며 금발의 청년이 중얼거렸다.

"나한테 그래도 말이지.”

청년이 입고 있는 정장은 그의 화려한 외모처럼 참으로 멋들어진 것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만큼 소녀가 입은 교복에 필적할 정도로 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유감스러운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의와 하의가 세트일 그 정장의 하의는 수선이 힘들 정도로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청년의 왼쪽 허벅지는 총에 맞았는지 처참하게 찢어져 있었다. 청년은 그런 자신의 상처를 바라보며 슬프게도 중얼거렸다.

“아아, 내 아르마니.”

청년은 정말로 자신의 다친 왼쪽 허벅지보다도 망가진 양복 때문에 울상을 짓고 있었다. 소녀는 화를 내며 청년의 오른 허벅지를 강하게 꼬집었다. 청년은 비명을 질렀다.

“아야!”

“너 말이야! 옷이 문제냐. 게다가 내가 틈틈이 공 들여 만들어 놓은 붕대를 당연하다는 듯이 얻어 쓰는데 말이야.”

청년은 그런 소녀의 말을 듣고서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수류탄 대신 건네 받은 붕대로 피투성이 왼쪽 허벅지를 둘둘 말았다. 소녀는 그런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지만, 청년은 그런 소녀의 태도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흐르던 땀을 옷소매로 닦아내며 웃었다. 소녀의 붕대는 확실히 효과가 좋았다. 아까 보단 확실히 편해진 청년은 자신의 총도 탄창을 갈면서 능청스럽게 말했다.

“아아, 이거 정말 편하더라고. 세상에나, 옷 위에 대충 감아도 살균 소독에 치유까지.”

TV 광고 멘트 같은 말을 지껄이며 찬양을 하는 청년에게, 소녀의 진지한 충고가 날아갔다.

“상처야 아문다 처도 총알은 안 뽑을 거야? 같이 파고들어갔을 옷 파편은? 그거 그대로 내버려두면 다리 썩는다 너.”

하지만 청년은 소녀의 충고를 웃어넘기며, 자기 자신이 둘러맨 붕대 위를 철썩 때렸다. 그 덕분에 짜릿한 고통이 달렸지만, 청년은 어깨를 부르르 떨면서 태연하게 입을 놀렸다.

“말 나온 김에 진지하게 묻는 건데 말이야, 용병 일은 때려치우고 이거나 대량생산해서 팔아보면 어떨까? 물론 앞 세계에서 대놓고 팔아먹지는 못하겠지만, 이쪽 동네만으로도 수요가 폭주할 거야. 이윤은 4대 6으로 나누자. 내가 4, 네가 6이야. 어때?”

소녀는 청년의 말을 완전 무시하고서 주변의 총성에 귀를 기울였다. 마침 청년의 말이 멈춤과 동시에 소녀는 장전된 권총을 쥐고서 일어서며 말했다.

“말 한번 잘했다. 다음부턴 대가를 받지.”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바위 뒤를 향하여 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괜한 말을 꺼냈다가 본전도 못 건진 청년도 자신의 울분을 애꿎은 바위 너머의 적들에게 풀기 시작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권총도 소녀의 그것과 비슷한 종류였다. 청년의 사격도 소녀의 그것에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소녀는 분명하게 청년보다 한발 더 나아갔다. 지금까지 든든한 엄폐물이던 바위에서 뛰쳐나간 것이다. 언뜻 용감해 보일지는 몰라도, 절대 현명해 보이지는 않는 소녀를 향해서 용서 없는 적들의 총탄이 날아들었다. 청년은 황급히 소녀를 엄호했지만 이미 소녀를 향한 총탄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소녀의 붉은 눈동자엔 망설이거나 후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적의 총탄이 소녀를 향해 날았다. 소녀는 총탄을 시야에 담으며, 그 총탄을 발사한 적들을 노려보았다. 소녀는 한 시야에 자신을 향해 총을 쏘는 모든 적들을 담았다. 일순간에 소녀의 뇌가 상황 분석을 끝마쳤다. 어떤 탄환이 치명적인지, 어떤 탄환이 빗나가는지. 그리고 난 후, 소녀도 마주 방아쇠를 당겼다.

소녀가 방아쇠가 당기자, 매저드에 장전된 마술탄환이 내재된 마력을 폭발시키며 날아갔다. 그렇게 공간을 비틀며 강력한 파동과 함께 발사된 총탄이 소녀에게 명중되었을 적의 총탄들의 중심점을 정확하게 통과했다. 소녀의 총탄에 실린 흉포한 마력의 파동이, 파동의 범위 안에 들어온 모든 총탄들을 미묘하게 틀었다.

실로 한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바늘구멍을 꿰뚫는 듯한 절묘한 기술이었다. 소녀가 발사한 총탄은 당연하다는 듯이 적 병사의 몸통에 처박혔고, 그 과정에서 소녀를 맞출 수도 있었던 총탄은 전부 궤도가 수정되었다. 그 결과 그 모든 흉탄들은 소녀를 맞추지 못하고서 조금씩 조금씩 그녀를 비켜갔다. 그 총탄들은 소녀에겐 닿을 수 없었지만, 살짝 살짝 스치다시피 지나가는 총탄들에 실린 위력이 소녀의 긴 머리카락과 교복 스커트를 바람처럼 흔들었다. 소녀는 시원하다는 듯이 웃었다. 적들에겐 그런 소녀가 어떻게 보였을까.

그것은 한 번으로 끝이 아니었다. 소녀는 그대로 내달리며 총탄을 연사해서 끊임없이 자신에게 날아드는 총탄들을 무력화시켰다. 소녀가 발사한 총탄이 적을 맞춘 것은 물론이었다. 그런 어이없는 신기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선보이며 달려나가는 소녀의 뒷모습을 보며, 청년은 침을 삼켰다.

매저드는 아이언 스태프에서 특급 에이전트들에게 지급하는 특별한 총이다. 청년 역시 소녀와 같은 특급의 위치에 있었다. 즉, 그가 지니고 있는 총 역시 소녀와 같은 매저드였다. 그렇지만, 청년은 같은 매저드를 가지고도 저 소녀처럼 공격과 방어에 동시에 사용하는 인물은 소녀 외엔 본 적이 없었다.

소녀가 탄창 하나를 비울 무렵, 정확하게 그녀는 그녀가 원하던 다음 엄폐물로 이동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빠르게 탄창을 교환한 후, 소녀는 방금과 같은 방식으로 이동했다. 그리하여 소녀가 다시 청년이 있던 바위로 돌아왔을 무렵에는 쏟아지던 총성도 거의 줄어있었다. 청년은 휘파람을 불면서 말했다.

“여전히 아슬아슬하게 외줄을 타는군. 구경할 가치가 있어.”

“나도 늘 이 짓을 할 때마다 두 번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걸 말 하면, 넌 웃을까.”

청년은 낄낄 웃으며 말했다.

“그래 놓고 노상 하잖아. 네가 싸우는걸 처음 보면 자살 희망자처럼 느껴진다고.”

“나도 알아.”

소녀는 씩 웃으며 권총의 탄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왼팔을 잠시 들었다가, 이내 입을 내밀며 블레이저 안을 뒤적거려서 탄창을 하나 꺼내며 말했다.

“탄창 남는 거 있으면 좀 줘. 난 이게 마지막인데.”

“나도 하나뿐이야. 애초부터 이 임무는 봉인 유적의 남은 유물 회수라고. 그래서 지금 무장 상태가 최악이다.”

“어쩐지 빌빌거리더라. 다리에 구멍이 나질 않나. 그 튼튼한 껍데기는 어디다 팔아먹은 거야?”

“내 코트는 클리닝 중이란 말이야. 별 수 있냐. 진짜 가볍게 생각하고 왔는데 말이지.”

소녀는 혀를 차며 자신의 탄창을 청년에게 건넸다. 청년은 소녀에게서 탄창을 받아 쥐고서 의아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소녀는 총을 블레이저 내부의 홀스터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럼 난 이걸로 하지.”

소녀는 그녀의 허리춤에 액세서리처럼 매달려 있던 15cm가량의 길이의 판을 잡았다. 소녀가 그것을 쥐자 벨트와 그 판을 연결하고 있던 은 사슬이 알아서 스스로 끊어져 나갔다. 소녀는 그 판을 허공에 휘둘렀고, 사슬의 속박을 벗어난 그 판은 폴딩 나이프처럼 펼쳐지더니, 30cm 정도의 막대기가 되었다. 소녀는 그 막대기를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소드 윗치 출진이다.”

“그거, 너무 티가 날 텐데.”

“당연한 거 아냐?”

“신전 입구 가까이에 내 다리에 구멍 낸 저격수가 있어. 날뛰더라도 놈에겐 안 걸리게 조심하라고.”

“알았어.”

소녀의 손에 들린 막대기의 끝에서 서서히 황혼빛 검날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전신이 바람에 흩날리듯이 펄럭거린다. 소녀는 각성 된 마력 때문에 펄럭이기 시작한 머리카락을 예의 붕대로 둘둘 감아 묶었다. 붕대를 끊은 것은 그 황혼빛 검날이다. 순식간에 날 길이만1m를 넘어서는 장검을 쥔 소녀는 문뜩 청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내 왼손으로 스커트를 눌러 내리며, 바닥에 앉은 채로 태연하게 자신을 올려보는 금발의 청년을 노려보았다.

“너, 뭘 그리 태연하게 보는 거야. 걷어찬다?”

청년은 씨익 웃으며 등의 바위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소녀는 그런 사내의 모습을 의아하다는 듯이 잠시 바라보다가, 귓가에 걸친 무전기에 손을 대고서 말했다.

“포인트 클리어. 부상자 1명을 제외하곤 싹 죽었어. 그럼 난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날뛸 테니까, 뒤는 잘 부탁해.”

-알겠다. 정말 빌어먹을 바캉스군.

“애초부터 작전을 바캉스 취급한 놈이 바보야.”

소녀는 혀를 내밀고서 무전을 꺼버렸다. 잠시 후, 춤추던 검은 흑발은 사라지고 황혼빛 섬광만이 사진기의 플래시처럼 잔상으로 남았다. 그 후에도 청년은 눈을 뜨지 않았다.





“소드 윗치가 이제야 움직이기 시작했군. 먼저 간 놈들은 누군진 몰라도 한 놈 빼고 다 죽은 모양이야.”

“다 들렸어. 혼도 난 것 같은데 대장.”

대장이라 불린 사내는 멋쩍은 표정으로 답했다.

“거야 뭐… 원래 봉인 유적의 남은 유물 회수 같은 건 기본적으로 빈집 털기 아냐? 공돈 생긴 기분이라 좀 들떴지 뭐냐. 그런데 그 와중에 우리 말고 다른 빈집 털이범이랑 마주칠 줄은 몰랐지.”

용병들은 함께 낄낄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서로 이를 갈았다.

“그리고 그놈들 때문에 여럿 뒈졌고 말이야.”

“그러게 말이다. 앞 팀은 정말 싹 쓸린 모양이야. 숙소에 빈방이 왕창 생기겠는데. 이 쪽은 형식적인 호위를 위한 기본장비 말고는 없잖아.”

웅성거리는 용병들 사이에서 그들의 대장이 혀를 씹듯이 말했다.

“복수를 할 생각은 없다. 그저 우린 임무에 충실할 뿐이다. 임무에 방해가 되는 놈들을 쓸어버리러 가자.”

그 말을 들은 남자들은 불붙은 기름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때, 한 용병이 투덜거리며 말했다.

“그렇지만, 옛 생각 나는군. ‘사신’ 말이야.”

타오르던 남자들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말을 꺼낸 남자는 갑자기 싸늘해진 주변을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이내 방금 스스로 했던 말을 돌이켜 보고는 자신의 입을 막았다. 그런 그에게 다른 남자가 말했다.

“어이 너. 그 말은 하지 마.”

“그렇군… 실수했어.”

“여기 소드 윗치가 없었으니 망정이지, 그 녀석 앞에서 그런 재수없는 소리 했으면 넌 내가 먼저 박살 냈을 거야.”
그 소녀, 소드 위치는 한 때 사신이라 불린 적이 있었다. 그녀가 투입되는 모든 임무는 지옥 같은 난이도를 가졌다. 그러면서도 언제나 자기 자신만은 살아서 돌아온다고 해서였다.

하지만, 소녀는 사신이라 불리면서도 단 한 번이라도 자신을 위해서 남을 희생시킨 적은 없었다. 소녀는 언제나 필사적이었으며, 그들 역시 소녀에게 몇 번이고 목숨을 빚졌었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서 지금의 그녀를 사신이라 부르는 용병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미안. 나중에 내가 직접 사과하지.”

그의 사과를 들은 용병들은, 천천히 분위기를 다시 느긋하게 풀었다. 옆에서 다른 용병이 말했다.

“그럼 우리는 이제 뭐 할 건데?”

“일단 혼자 살아있다는 그 럭키가이부터 확보하자고. 그 다음은 소드 윗치와 합류하자. 그 녀석, 일이 이 지경인데도 뒤로 빠질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야.”

용병 중 한 사람이 어깨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후유… 가서 어떻게 소드 윗치만 잽싸게 업어오면 안 될까. 나라도 그 조그마한 계집애라면 한 번에 네 명 정도는 데리고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별로 저런 곳으로 따라가고 싶지는 않구먼.”

“우히히히히…. 아서라 아서.”

“그럼 죽은 자들을 따라가시지요.”

“낄낄낄, 소드 윗치 혼자서 너 사십 명은 때려눕힐 텐데, 애초부터 그럴 용기가 있다면 그냥 뛰어들자고.”

“흐흐, 헛소리 하지 말고 움직이자.”

사내들은 잠시 웃고 떠들었다. 덕분에 그들은 완전히 긴장을 풀 수 있었다. 전투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준비된 것이다. 그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이 말 했다.

“…아니, 그런데 방금 어떤 놈이 이상한 말 하지 않았냐.”

“엉?”

“그럼 죽으라나 뭐라나… 어떤 놈이야?”

용병들은 의아하게 서로 바라보았다. 그 덕분에 그들은 어느 사이에 자신들의 사이에, 한 명의 이방인이 끼어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있던 이들은 한순간에 흩어져서 총을 겨누었으며, 그와 가까이 있던 이들은 신속하게 그 이방인을 덮쳐 눌렀다.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한 체계적인 움직임이었다.

바닥에 깔린 그 이방인은 정말 이상한 사내였다. 그를 보던 용병 중에 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의사? 뭐야 이 놈은.”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그 모습은 확실히 의사의 그것이었다. 그들은 어째서 이렇게 진한 약 냄새를 풍기는 남자를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그 자신을 의심했다. 용병단의 대장은 무력화된 괴한의 머리로 권총을 겨누고서 물었다.

“넌 누구냐.”

머리에 겨누어진 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의사 복장의 사내가 유쾌하게 웃으며 말 했다.

“아아… 과연 아이언 스태프의 분들답군요. 히히히히. 히히히히! 정말 대단해요. 그럼 여기서 문제! 과연~ 저는 누구일까요?”

대장은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리고, 그들은 어이없는 광경을 지켜봐야만 했다. 의사 복장의 괴한의 머리가 대장이 발사한 총탄을 튕겨냈고, 그 총탄이 하필이면 괴한을 짓누르고 있던 동료 용병에게 맞아버린 것이다. 그 순간 괴한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를 누르고 있는 용병들의 관절 꺾기를 힘으로 풀어버렸다. 보통 인간이 풀 수 있을리가 없는 정확한 기술이었지만, 어처구니없게도 그는 자신의 팔 관절을 너무나 손쉽게 뽑아서 빠져나갔다. 그리고 포박이 풀리자마자 뽑을 때와 같이 쉽게 관절을 맞춘 후, 그 괴한은 그 자리에서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그의 등 위에는 여전히 그를 누르고 있던 용병들이 있었다.

“건강한 몸을 위한 특별 제안! 자, 모두 운동을 합시다?”

그를 억누르던 용병들을 자신의 위에 얹은 체, 태연하게 팔굽혀펴기를 하는 의사 복장의 괴한. 그의 팔굽혀펴기는 점차 더더욱 강력해지더니, 결국에는 필사적으로 위에서 억누르던 용병들을 저 멀리 튕겨내 버렸다. 지켜보던 용병들의 사이에서 경악의 신음성이 퍼졌다.

현실감 없는 비행을 경험한 그들은 재수 없게도 하필이면 머리부터 바닥에 떨어졌다. 그들의 목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나고서야 그 주변은 조용해졌다. 의사를 제외한 그 자리의 모든 이들은 방금의 어이없는 광경을 보며 아연했다.
용병들 중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튀어나왔다.

“이… 이놈은 설마, 네크로 닥터인가?”

“네크로 닥터… 우쿠라고?”

“딩동댕동댕!”

경악하는 용병들을 상관하지 않고, 그들에게 우쿠라고 불려진 의사 복장의 괴한이 천천히 일어났다. 하지만, 아까 처음 발견되었을 그와는 어딘가 모습이 달라져 있었다. 그가 잠깐 팔굽혀펴기를 한 사이에 그의 몸에는 엄청난 근육이 붙어있었던 것이다. 특히 그의 팔은 인간의 범주를 초월해 있었다. 가운 너머로 근육이 드러나서 옷을 속에서 압박했다. 그 괴한은 미소를 지으며, 거대한 팔을 들어서 자신의 안경을 고쳐 썼다.

“정답입니다! 네네, 제가 바로 그 우쿠 의사 선생님입니다. 정답을 맞히신 분들을 위한 상품은, 건강한 몸을 위한 특별 운동 코스 2번째에요! 운동량을 조금 올려보도록 합시다. 자, 애니 간호사, 수술 준비!”

닥터가 육중한 근육이 붙은 자신의 팔을 들어, 허공에서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그러자 숲 속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날아들면서 그 앞에 있던 용병들을 날려버렸다. 날아간 용병들은 거의 죽었고, 죽지 않은 이들도 중상을 입어야만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용병들은 재빠르게 반응하여 은폐물을 찾아 몸을 숨겼다.

마치 하얀 유령처럼 튀어나온 그것은 어처구니없게도 이동식 수술대였다. 병원에나 있어야 할 그런 것이 나타난 것이다. 몇몇 용병들은 그것을 확인하고서 살짝 혀를 깨물었다. 너무나 초현실적인 광경이었던 것이다.

그 이동식 수술대를 끌고 온 것은 풍만한 몸매가 아름다운 간호사였다. 맵시 있는 몸매를 아슬아슬한 간호복으로 감싸고서, 스스로 끌고 온 수술대의 가장자리에 관능적인 자태로 엉덩이를 걸친 후 자신을 바라보는 용병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녀는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천사와 같은 아름다움이 있었다.

“애니 간호사, 이리 오세요.”

닥터의 말에 간호사는 아이처럼 웃으며 그에게 접근했다. 닥터는 그런 그녀의 큰 가슴을 애무하며 그녀의 목 뒤로 손을 넣었다. 하지만, 의사의 팔은 아까의 운동으로 너무나 발달되어 있던 탓에 쉽게 들어가지가 않았다. 그러자 간호사는 의사가 자신의 목 뒤로 손을 넣기 쉽도록 앞 단추를 하나하나 풀었다. 그러자 그녀의 풍만하고 하얀 가슴이 옷 밖으로 노출되었다. 그녀는 브래지어를 하고 있지 않았다. 용병들은 너무나 어이가 없어서 그 광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의사는 간호사의 목 뒤를 쓰다듬으며 무언가를 찾았다. 그것은 가느다란 튜브였다. 의사는 그 튜브를 쭈욱 뽑아서 자신의 머리에 처박았다. 간호사는 그 모습을 황홀한 듯이 바라보았다. 튜브를 뽑는 과정에서 튀어나온 핏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졌고, 몇몇 용병들은 그 광경을 보며 구역질을 했다.

이윽고 의사는 그 튜브를 자신의 머리에 연결했다. 그리고 간호사에게서 의사에게 무언가가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아… 애니. 애니 간호사의 신선한 엔도르핀이 나에게 오고 있어요.”

“닥터… 닥터….”

외부로 노출된 간호사의 새하얀 유방 끝의 붉은 포인트가 굳고 있었다. 붉게 상기된 얼굴로 한숨을 내쉬는 그녀는, 자신의 엔도르핀을 닥터가 빨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에 무척이 만족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런 행복감이 그녀에게서 또다시 엔도르핀을 생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에게 닥터의 명령이 떨어졌다.

“자, 애니. 닥터로서 명합니다. 엔도르핀 생성을 중지하세요. 지금의 당신에게 행복감은 있어선 안 됩니다.”

“네, 닥터.”

튜브가 점차 마르고 있었다. 천사처럼 미소 짓던 애니는, 점차 숨을 고르며 조용히 침묵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닥터는 머리의 튜브를 뽑아내었다. 그 튜브는 마치 빨아들여 지는 면발처럼, 기묘한 소리를 내면서 다시 애니의 몸으로 들어갔다. 닥터가 말했다.

“애니, 행복감은 없어졌습니까?”

“네 닥터.”

“그럼 이제 행복하지 않지요?”

“네 닥터.”

“행복할 수 없어서 슬픈가요? 화가 납니까?”

“네 닥터.”

닥터는 주변을 둘러보며 쾌활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수술을 시작합시다. 환자는 저분들이고, 수술의 내용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한 용병이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자신의 총을 난사하며 외쳤다.

“쏴! 이 미친 것들을 죽여버려!!”

“안 돼, 아군이 맞는다!”

흥분한 몇몇 덕분에 총탄이 쏟아지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용병들이 아군의 총을 맞는 일이 벌어졌다. 대장은 필사적으로 만류했지만 상황은 혼란 그 자체였다. 대장은 문뜩, 아까부터 공기 중에 뭔가 이상한 약 냄새가 퍼져있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의사와 간호사는 쏟아지는 총탄을 무시했다. 어쩌다 날아든 총탄이 정확하게 의사의 머리에 맞았지만, 그는 그 반동에 의해 몸을 흔들 뿐이었다. 간호사도 마찬가지었다. 쏟아지는 빗방울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몸을 흔드는 와중에 의사가 말을 이었다.

“…삶을 치료합시다. 삶이라는 불행한 병에 걸린 이들을 치료해줍시다. 잘할 수 있지요?

“네 닥터.”

“그럼, 집도 개시!”

쏟아지는 총탄의 사이로 표정이 없는 간호사가 이동식 수술대의 아래에서 거대한 전기 톱을 꺼내들었다. 닥터도 자신의 의사 가운에서 거대한 메스들을 뽑아들었다. 피의 수술이 시작되었다.







by 달지않은고구마 | 2005/12/20 03:26 |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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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5/12/20 07:4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달지않은고구마 at 2005/12/20 08:04
비공개 나으리 // 매번 고맙심다. 어휴, 정말 요즘 제 인생의 낙이심다(...)
Commented by Lord at 2005/12/20 10:38
멋져요..

소드위치가 총알사이로 막히는 장면을 보니.. 키라보살이 떠올라요;;
Commented by 유피테르 at 2005/12/20 12:56
...'집도 개시'. 쓰러지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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