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밤]1권- 검의 마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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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밤]1권- 검의 마녀 -8-  
[영원의 밤]1권- 검의 마녀 -9-





에쿠온은 한 쪽뿐인 팔로, 윗머리가 날아가 버린 턱을 괴면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여전히 기괴한 것이었으나, 녹티스는 자신도 모르게 그 광경에 익숙해지는 것을 느꼈다. 녹티스는 그런 자신에게 부르르 어깨를 떨었다. 하지만, 에쿠온은 그런 녹티스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유적은 분명 봉인된 유적이지만, 어떤 이유 때문에 미처 수거할 수 없었던 유물이 하나 존재합니다. 이 유적은 일종의 감옥이고, 그 유물은 그 감옥의 열쇠입니다. 봉인된 이는 너무나 강대해서 신으로 숭배 받았던 고대의 존재죠.”

“신?”

“우리 원류추종자들은 연구를 위해서 그의 샘플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봉인을 풀었습니다. 그 결과, 그가 깨어났지요. 결과적으로 많은 이들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도 협회에 이 유적의 봉인이 깨졌음을 알렸지요.”

녹티스는 어처구니 없는 감정을 담아서 말했다.

“…너희가 저지른 일은 너희가 책임을 지라고.”

“뭐, 그런 소모적인 일을 굳이 저희가 부담할 필요는 없습니다. 이 세계의 관리자를 자처하는 이들에게 맡겨도 될 일이니까요. 당신이 받은 임무에서 회수해야만 하는 유물은 바로 그 봉인의 열쇠입니다.”

에쿠온의 말은 뻔뻔스럽기 그지 없었지만, 이미 녹티스는 그 정도에 일일히 리액션을 취하진 않았다. 상당한 내성이 생긴 것이다.

“그럼 이 안에는 너희 원류추종자들도 일단은 포기한 괴물이 있는 거로군. 난 임무를 위해선 그곳으로 들어가야 하고.”

“그렇습니다.”

손등이 날아가 버린 장갑으로 자신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녹티스는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에쿠온이 준 정보는 지금의 그녀에게 꼭 필요하던 지식이었다. 그만큼 아이언 스태프에서 그녀에게 줬던 사전지식과 정보들은 형편없는 것이었다. 애초부터 봉인 유적의 남은 유물의 회수라고 했기에, 엄청나게 쉬운 임무라고 판단을 하고 있었으니까. 아이언 스태프로 돌아가서 이 의도적인 정보공작을 보고하면 모르긴 몰라도 폭탄이 터진 것 같은 꼴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데 우쿠 의사는 왜 안으로 들어간 거지?”

“그는… 당신도 아시다시피, 연구에 미친 광인이지요. 무슨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그의 샘플을 획득하려는 모양입니다. 물론 저희도 이대로 계속 고대의 존재의 샘플을 노리는 것은 낭비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에, 우쿠 의사에게 더 이상의 지원은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한 것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자체적으로 병사들을 어떻게든지 조달한 모양이더군요. 다시 한번 그를 쓰러트리기 위한 시도를 하려는 모양입니다.”

녹티스는 병사 조달 부분에서 어쩐지 이상한 감이 느껴졌지만 일부러 그것을 무시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정보를 얻는 것이다.

“즉, 난 어부지리를 노리면 되겠군. 샘플 수집을 저지하라는 것은 임무 내용에 없으니, 유물만 가지고 나오면 끝인가.”

“글쎄요… 무슨 이유인지 봉인이 풀린 후, 이 유적으로 한번 들어가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다시 빠져나올 수 없는 듯 합니다. 이 유적은 입구가 2개이지만 기본적으로 일방통행입니다. 손목시계를 떠올리시면 간단하겠군요. 시계 부분의 유적 최심부를 중심으로, 풀린 상태의 시계 끈이 평소의 통로입니다. 하지만, 일단 들어서면 이렇게….”

에쿠온은 자신이 잘라낸 팔을 집어들어서 녹티스에게 보여주었다. 그 팔의 손목에는 화려한 금시계가 매어져 있었다. 척 보기에도 비싼 물건인 것 같았지만, 녹티스에겐 그 시계가 악취미인 것 처럼 보일 뿐이었다. 게다가 어차피 그 금시계도 지금의 에쿠온처럼 환영일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손목시계가 채워지듯이, 두 개의 통로가 이어집니다. 루프가 되는 셈이지요. 이것이 우리가 이 유적에서 샘플 수집을 포기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나온 사람이 없단 말이야?”

“단 두 명. 우쿠 의사와 그의 간호사는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나왔다고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군요. 들어간 우쿠 의사와 그의 간호사는 안에서 살해당했습니다. 과거의 존재에게. 그래서 지금의 우쿠 의사와 간호사는 백업 된 카피들인 셈이죠. 그들의 주장에도, 제가 보기에도 원래의 본인과 다른 점은 별로 없어보이지만.”

아마도 아까의 우쿠는 원래의 우쿠가 아닌, 호문클루스 창조를 응용한 원본의 레플리카인 모양이었다. 녹티스는 머리를 싸쥐며 중얼거렸다.

“역시 천재….”

“확실히 우쿠 의사는 참으로 기상천외한 인물인지라, 그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저로서도 꺼려지는 일입니다.”

고개를 숙이는 녹티스에게, 어딘지 힘이 빠진 듯한 에쿠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녹티스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충분히 이해해.”

“감사합니다.”

에쿠온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그 덕분에 그의 머리에 고여있던 무언가가 앞으로 쏟아지려 했다. 녹티스는 기겁을 하며 그를 만류했다.

“인사 하지 마! 자자, 말이나 계속 해.”

“어쨌든, 그 덕분에 고대의 존재 역시 유적의 밖으로는 나오지 못하는 듯합니다. 저희는 그 봉인의 열쇠가 되는 유물이 유적의 안에 남아있는 한, 고대의 존재에 대한 봉인은 완전히 풀린 것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지요.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만.”

과장스러운 몸짓으로 뜸을 들이며 일일히 자신의 반응을 기다리는 에쿠온에게, 녹티스의 자비심 없는 매서운 재촉이 날아들었다.

“이봐, 일일이 내 반응 기다리지 말고 빨리빨리 말해.”

덕분에 에쿠온은 조금 풀이 죽은 태도로 말을 이었다.

“후… 여기서부터는 전부 추측에 불과하니 판단은 녹티스 당신이 내리십시오. 고대의 존재를 쓰러트리면 공간왜곡이 풀릴지도 모릅니다.”

“난 별로 싸우고 싶지 않은데.”

“어디까지나 가설이니까요. 이런 가설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원래 출구가 존재하는 곳으로 유물을 가지고 나온다면, 통로가 회복되는 것은 아닐까요. 뭐 이 경우에는 고대의 존재도 함께 나올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아아, 그런 존재가 자유롭게 되어버리면 많은 이들이 불행해질지도 모르겠군요.”

뻔뻔스럽게 둘러대는 에쿠온을 보면서, 녹티스는 자신도 모르게 화를 버럭 내버렸다.

“애초부터 다 너희 탓이잖아!”

“뭐,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군요. 허나 당신은,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참으로 우스운 일이지만… 우리가 추진하는 일이 아무런 방해도 없이 성공해버려도 상관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하는 일은 당신과 같은 분에게는 무엇이든지 악행일텐데 말입니다.”

“으… 이 녀석.”

녹티스는 뚱한 표정으로 에쿠온을 바라보았다. 소녀의 동글동글한 붉은 눈동자가 에쿠온에게 끝없는 압박을 가했지만, 에쿠온은 여전히 당당한 태도로 입가에 손을 얹으며 웃었다.

“후후,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의 자매를 마중 나가야 할 시간이니까요. 당신이 우리의 것이 되지 않은 것은 무척이나 아쉽습니다.”

“나한테 자매는 없는데?”

“네, 없습니다. 실언이라고 생각해 주시길.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에쿠온은 정중한 인사를 남기고는, 하얀 안개가 되어서 사라졌다. 그곳에 남은 것은 머리와 팔이 날아간, 흉물스러운 병사의 시체뿐이었다. 녹티스는 팔을 끼고서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마지막까지 수수깨끼를 지껄이고 멋대로 사라져버리는 에쿠온의 태도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녹티스는 이를 갈면서 짜증을 내었지만, 그녀의 짜증을 받아줄 이는 이곳엔 없었다. 녹티스는 애꿎은 소매를 걷으며 말했다.

“고대의 괴물이고 우쿠 의사고 나발이고. 일단 좀 맞자.”

녹티스는 유적 안으로 달려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그 직전에 바닥에 떨어져 있던 라이플이 그녀의 시선을 잠시 끌었다. 녹티스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그 라이플을 집어 들고는, 유적의 입구로 향했다. 채찍처럼 휘둘리는 검은 머리카락 다발이 하늘하늘 흔들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두운 유적의 안으로 묵직한 발소리가 울렸다. 그 커다란 발소리의 주인은 놀랍게도 여자아이였다. 소녀다운 작은 몸이 한 발 한 발을 내디딜 때마다, 그녀의 작은 몸에 전혀 걸맞지 않은 거대한 발소리가 울려 퍼졌다.

문제는 그녀가 신고 있는 육중한 신발이었다. 중간 중간이 아이언 플레이트로 강화되어 있는 터라, 언뜻 보면 판 갑옷의 그리브처럼 보일 정도인 묵직한 부츠. 그 부츠가 바닥을 디딜 때마다 작은 폭음과 같은 큰 발소리가 울렸다.

그 부츠는 임팩트 부츠.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타격을 흡수하고, 타격을 방출할 수 있는 마술이 담긴 신발이다. 그렇기 때문에 타격량을 방출한 직후에는 오히려 그 어떤 신발보다도 발소리를 죽일 수 있지만, 타격량이 잔뜩 충전된 상태에서는 발소리가 커져 버렸다. 그 육중한 발소리는 소녀의 여린 마음을 아프게 하기 충분했다. 엘리베이터에 자신이 탑승하자마자 정원 초과 소리가 울려버리는 느낌이랄까.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탑승자들은 마지막에 탄 소녀를 바라보고 그녀는 큰 마음의 상처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나가야만 하는 것이다. 이 발소리도 그러한 존재였다. 결코 녹티스의 몸이 무거워서가 아니다!

어쨌든, 지금 녹티스의 임팩트 부츠에는 오랜 시간 달리느라 충격량이 지나치게 충전된 상태였다. 방출하지 않으면 점점 더 심해질 것이었다. 이 육중한 발소리는 일종의 위험 신호다. 충격이 용량 이상으로 차오르면, 임팩트 부츠는 자동으로 충격을 기폭 시켜버린다. 즉, 그렇게 알아서 터져버리기 전에 어딘가에 배출을 하는 편이 좋았다. 녹티스는 문뜩 ‘화장실이 급한 소녀’라는 비유를 떠올려 버렸다.

“아 젠장… 정말 싫은 비유인데 자동으로 떠올려 버린다니까. 애초부터 듣질 말았어야지.”

죽을 날이 머지않은 노인네는 의도하지 않은 성희롱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댈 수 있는 일그러진 특권을 가진다. 저 무척이나 알기 쉬우면서도 저속한 비유는 그런 이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녹티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계속해서 달려나갔다. 녹티스가 고개를 흔들자, 그 뒤의 긴 머리 다발도 자신을 묶은 하얀 붕대와 함께 하늘하늘 춤을 추었다.

녹티스는 라이플의 탄창을 꺼내보았다. 탄환은 아직 들어있었지만, 몇 발이나 들어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녹티스는 빈 라이플을 옆구리에 끼고서 탄창의 탄환을 한 발 꺼내보았다.

탄환에 빽빽하게 적힌 마술식은, 조명이 턱없이 부족한 유적 내부에서 조사할 수 있을 정도로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었다. 녹티스는 한숨을 쉬며 총알 한발의 무게를 손으로 기억했다. 그 다음엔 탄창의 무게였다. 물론 그녀는 달리는 상태에서 조금의 속도도 늦추지 않았기 때문에, 그 과정은 상당히 위태위태했다. 한쪽 팔로 라이플을 끼고, 탄창에서 총탄 하나를 빼낸 후, 아무것도 들지 않은 손으로 무게를 잰다. 그것 만으로도 녹티스는 현재 탄창 안에 총알이 몇 발이나 들어있는지 적당히 추론해낼 수 있었다. 보통의 사람은 해낼 엄두도 못 낼 기술이었지만, 녹티스는 가능했다.

어느덧 주변은 제법 밝아져 있었다. 깊게 들어오니 오히려 밝아진 셈이다. 어이없게도 인공적인 것이 분명할 조명들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전선과 전구, 그 외의 장치들. 이건 누군가가 발굴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아마도 원류추종자들이 설치해둔 것이리라.

신전의 크기 자체는 상당한 것이었다. 통로와 광장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길고 넓은 길이 계속 이어졌다. 길은 크게 복잡한 것은 아니었지만, 거대한 기둥들이 통로의 양 옆으로 정렬해 있어서 숨고자 한다면 쉽게 몸을 숨길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신전의 구조 자체는 간단했다. 군데군데 구부러진 길이 있긴 하지만, 이대로 계속 나아가는 것으로도 최심부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에쿠온이 준 정보에 거짓은 없었다.

그리고 녹티스는 마침내 최심부에 도착했다. 그곳은 피바다였다. 엄청난 대량살육의 폭풍이 마음껏 희생자들을 유린한 광경이었다. 바닥에 난자한 피와 살점, 무수한 인간의 잔해가 그곳에 있었다.

그 모든 시체는 거대한 힘을 가진 야수에 의한 것이었다. 난자한 이빨 자국, 발톱 자국과 무식한 힘에 의해 쥐어 터진 시체 등등. 더욱 기괴한 것은 상당히 예전에 죽었을 시체인데도, 그 어떤 시체에도 썩을 기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이 신전은 어쩌면, 내부 전체가 일종의 보존효과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때, 시체들의 바다 한구석에서 인기척이 났다. 녹티스는 순간 라이플을 겨누었지만, 인기척은 무척이나 미약한 것이었다. 녹티스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여어.”

그 결과, 인기척이 나는 곳에 도착한 녹티스는 정말 만나기 싫은 녀석과 만날 수 있었다. 너덜너덜해진 우쿠 의사였다.

“아니 이게 누굽니까! 소드 윗치 아가씨? 아아, 죽기 직전에 제 눈을 호강시키기 위해서 하늘이 보내주신 천사인가요? 이것이 꿈인가요 생시인가요! 아아, 언제 봐도 깜찍하시기도 하셔라!”

-콰앙!!

녹티스는 망설임 없이 부츠에 충전되었던 막대한 충격을 격발시키며, 우쿠 의사의 머리통을 축구공 차듯이 걷어차버렸다. 폭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이 울려퍼졌다.

“꺄아아홍!”

빈사상태의 우쿠 의사는 묘한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한쪽 신발뿐인 타격이었지만, 덕분에 녹티스의 발걸음 소리는 상당히 줄어들 수 있었다. 녹티스는 잠시의 제자리걸음으로 그것을 확인한 후, 멀리까지 날아간 우쿠 의사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소녀의 발이 우쿠 의사의 머리 위에 얹어졌다. 녹티스는 분노를 담아 우쿠 의사의 머리를 밟고 있는 다리에 힘을 꾹꾹 주며 말했다.

“그러게 좀 미리 죽지, 왜 아직까지 살아있어서 내 기분을 잡치게 하는 거야? 그리고 제발 나한테 친한 척 하지 마라 이 자식아. 아 정말, 오늘따라 당장 잡아 죽일 원류추종자 애들이 왜 이리 친하게 구는거야?”

“하지만, 제가 살아있어서 아가씨도 기쁘지요? 기쁘지 않습니까? 절 위해서 이곳에 오신 것은 아닌가요? 그 외엔 아가씨가 이곳에 올 이유를 추론해낼 수가 없군요! 정보가 너무나 부족해요!”

녹티스는 눈을 가늘게 떠서 우쿠를 바라보았다. 하반신은 완전히 으깨져 있었고, 입고 있는 옷도 어딘가 매우 지저분했다. 무엇보다 이 ‘시체’는 죽은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것처럼 보였다. 아무래도 이 우쿠 의사는 아까 녹티스와 대화를 나누었던 이와는 다른 존재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너, 구 버젼이구만.”

녹티스의 말을 들은 우쿠 의사가 크게 탄식하며 말했다.

“오 이런, 벌써 예비 우쿠가 눈을 떠버렸군요! 아마도 예비 애니 간호사가 먼저 눈을 뜬 후, 혼자 있기 외로워서 쓸데없이 예비 우쿠를 깨워버린 모양입니다. 아아 그렇다면 전 애니 간호사에게조차 버림받은 건가요?”

머리 한 쪽이 우그러져 있는데도 끝없이 나불거리는 남자를 보면서, 소녀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이게 웬 난데없이 복제인간의 딜레마란 말인가. 어이가 없었다.

“어머, 이게 웬 공상 소설에 나올 법한 운명적 비극의 주인공이니. 안 어울리게.”

“아아 전 버려졌군요. 다른 제가, 더욱 멀쩡한 제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는데도 전 죽지 못했군요! 파트너인 애니 간호사에게조차 버려졌어요! 이 세상에 더 이상 저를 위한 자리는 남아있지 않는 것이로군요!”

녹티스는 우쿠 박사의 머리에 얹어놓았던 자신의 다리를 크게 한번 내리찍으며 말 했다.

“맞장구 쳐줬다고 오버하지 마. 이 자식아.”

“네. 어찌 되었든, 모처럼이니 알고 싶은 것이 있다면 답변해드리겠습니다. 그 대신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잠시 저를 도와주실 수 없으신지요? 보시다시피 몸이 망가져서 독자적인 활동이 불가능하게 되었답니다. 우리 사이의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부디 절 도와주세요!”

녹티스는 다시 그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둔탁한 타격음이 소녀의 싸늘한 음성과 함께 빈 공동을 울렸다.

“옛정 같은 거 없어.”

“넵. 그래도 좀, 도와주세요. 부탁합니다 여왕님. 신발이라도 핥을게요.”

그렇게 말 하고서 정말로 혓바닥을 낼름거리기 시작하는 우쿠 의사에게 기겁해서, 녹티스는 일단 그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이미 그녀의 부츠에는 이곳에 널린 피가 즐비했지만, 그래도 우쿠의 침이 묻는 것은 싫은 듯 했다. 그리고 녹티스는 생각에 잠겼다. 우쿠에게 뭔가 들을만한 정보가 있을까?

하지만, 녹티스는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녀는 다시 우쿠의 머리통을 세게 짓밟았다. 이번에는 팔까지 무릎 위에 얹어서 위력을 늘렸다. 녹티스는 머리를 낮춰서 우쿠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봤다. 붉은 눈동자가 유적 안의 어둠 안에서도 맹렬한 살의로 빛났다.

“유감스럽게도 알고 싶은 거라면 에쿠온이 다 말해줬어. 그리고 난 네 놈의 레플리카에게 약속을 했어. 반드시 머리통을 으깨주겠다고.”

녹티스는 천천히 우쿠 의사의 머리를 밟고 있는 자신의 다리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마치 프레스 같은 강력한 파괴력이 서서히 그의 머리를 손상시키기 시작했다. 우쿠 의사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하, 하지만 저랑 한 약속이 아니잖아요! 전 들어본 적도 없어요! 이러지 마세요! 우리 대화로 해결하지요, 아가씨!”

녹티스는 우쿠 의사의 말을 완전히 무시했다. 절망에 잠긴 우쿠 의사의 마지막 절규가 울려퍼졌다.

“아 안돼, 이대로 죽을 순 없어! 나의 이 데이터를 후계에게 반드시 넘겨줘야만 하는데! 소드 윗치 녹티스의 팬티는 줄….”

-콰앙!

녹티스는 임팩트 부츠에 남아있던 모든 타격을 다시 한번 격발 시켰다. 그것으로 이 미치광이 천재는 이번에야말로 숨을 거두었다. 하지만, 녹티스는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마침 그때였다. 녹티스가 온 방향이 아닌, 그 반대편 통로에서 무수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가장 앞에는 방금 녹티스가 박살내버린 우쿠 의사가 있었다. 그는 녹티스를 보고서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녹티스는 완전히 박살나버린 우쿠 의사의 시체를 힐끔 본 후, 다시 새로 나타난 우쿠 의사를 바라봤다. 새로 나타난 우쿠 의사는 맹렬히 손을 흔들며 주인 만난 강아지처럼 기뻐하고 있었다. 녹티스는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 자식!”

마술을 동반한 돌진이었다. 한 순간에 피바다를 가르고 나타난 녹티스의 흉흉한 태도에, 우쿠 의사는 몸을 뒤로 빼며 말했다.

“아니, 아가씨. 왜 그리 화가 잔뜩 나셨습니까? 혹시 이분들 때문입니까?”

“그건 네 놈이 내 팬티를!”

“팬티를?”

“이분들?”

우쿠 의사와 녹티스는 서로에게 동시에 궁금증을 주고받았다. 아무래도 의문에 대한 욕망은 우쿠 의사쪽이 좀 더 간절해 보였지만, 녹티스는 그런 우쿠 의사를 신경쓰지 않고 그와 함께 온 이들을 둘러보았다. 녹티스는 우쿠 의사와 함께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바로 알아낼 수 있었다. 그들은 그녀와 함께 이 곳으로 왔던 용병들이었다. 녹티스는 당황하며 말했다.

“어? 당신들?”

그들은 녹티스를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우쿠는 방금 녹티스가 한 말이 너무 궁금해서 죽을 것 같은 간절한 표정으로 녹티스를 바라보았지만, 녹티스는 그런 그에게 살기가 가득 담긴 눈으로 마주 대했다.

“왜 이들이 네 놈과 같이 있지? 전부 죽인 거 아니었어?”

용병들은 전부 의식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눈은 풀려있었고, 몸의 움직임은 어딘지 불안해 보였다. 마침내 우쿠는 녹티스가 자신의 의문을 풀어줄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알고 크게 낙심하며 답했다.

“아아… 원류추종자들이 더 이상 병력을 지원해주지 않겠다고 해서, 제가 알아서 조달한 겁니다.”

“조달했다고?”

녹티스의 살기가 더욱 심해졌다. 우쿠는 그런 녹티스를 보면서 양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아니 아니, 설명 할 테니까 잠시 기다려주세요. 자, 여러분~? 전멸 했나요~?”

그러자 용병들은 마치 노래를 부르듯이 입을 모아 외쳤다.

-전멸했어요~!

우쿠는 마치 유치원생들을 인솔하는 교사와 같은 태도로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다시 녹티스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자, 보시다시피 이들은 죽은 시체들입니다. 제가 잠시 되살려서… 얼레?”

우쿠 의사가 눈을 돌린 곳에 녹티스는 없었다. 우쿠는 당황하며 사라진 녹티스를 찾아서 두리번두리번 거렸다. 하지만, 녹티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 황혼의 빛은 어디서 뿜어져 나오고 있는 것일까? 어두운 광장을 울리는 소녀의 목소리가 위에서부터 들려왔다.

“죽어버려!”





by 달지않은고구마 | 2005/12/23 04:54 | | 트랙백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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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달지않은고구마 at 2005/12/23 07:24
조금 애매한 곳에서 끊었습니다. 다음편은 실컷 싸우고 실컷 피튀기고 실컷 어두울 것인지라, 다소 개그 부분이랑은 살짝 분리해내려는 속셈임다.
Commented at 2005/12/23 08:0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달지않은고구마 at 2005/12/23 08:28
오타 지적 정말 감사합니다. 매번 감사하다고 하니 뭔가 싸구려가 된 느낌이지만, 그래도 매번 매번 거듭 감사합니다. 음하하하.
Commented at 2005/12/23 08:43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달지않은고구마 at 2005/12/23 08:47
비공개// 알겠심다 -ㅂ- 매번 고마워요.
Commented by 실버 at 2005/12/23 10:47
껄껄..역시 우쿠나 에쿠온같은 원류신봉자들은 맘에 들...( -_)y~
Commented by Lord at 2005/12/23 10:51
다들.. 왜 비공개로 덧글을 남기는걸까요?;
저도 비공개로 남겨야하나(..)

어재거나 이번편도 매우 재미있어요 ;ㅁ;
팬티 부분은 좀더 자세히 적어주셔도 좋을텐데;;
그건 그렇고 보다보면 아련히 조조의모험이 떠오르네요..
조조의모험 보다야 훨씬 재밌지만요^^;
Commented by 달지않은고구마 at 2005/12/23 10:59
자세히라면 어떻게 자세히 적어드리오까(...) 군대가기 전에 수정하면서 참조하겠습니다(...)
Commented by 유피테르 at 2005/12/23 12:58
..뭔가 덧글을 남기려고 했는데 '조조'의 모험이라는 덧글에 미친듯이 웃다가 까먹어버렸습니다.
Commented by 달지않은고구마 at 2005/12/23 13:24
안 웃을 수 있었는데 유피님 때문에 저까지 oTL
Commented at 2005/12/26 10:40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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