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유령金屬幽靈 -3- (Story 1, 희누)

금속유령金屬幽靈 -1- (프롤로그)
금속유령金屬幽靈 -2- (Story 1, 희누)





말이 오누이지 사실상은 피도 안 섞인 생판 남남이었다. 운명이라는 녀석이 없었다면, 이렇게 우리 두 사람이 서로 만나서 만담을 주고받으며 시시덕거릴 수 있을 확률은 없음에 가까우리라. 세상이 개판인 덕분에 생겨난 고아인 나를 영감님이 주워왔을 때, 이미 이 녀석은 영감님에게 주워져서 세상의 두려움에 부들부들 떨며 매 순간을 연명하던 나에 비하면 호사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다. 하여간 그렇게 생판 남남일 두 사람이 오누이가 되어 버렸다. 그야말로 역동적인 세상의 흐름이 느껴지는 장대한 사연이 아닌가? 아니라고? 운명이라는 놈도 참 웃기는 놈이다. 기껏 인연이 전혀 없을 우리를 만나게 해 놓고서 오누이로 만들다니, 이래서야 결혼을 못 하잖아. 제기랄.

이 녀석이 톡톡 튀는 말을 떠 버릴 때마다 나쁘다 나쁘다 겉으로는 그리 표해도, 실상 속마음은 그 모든 게 너무 사랑스러워 미칠 지경이다. 물론 죽어도 말은 못 하지만. 나는 대신 다른 말을 하기로 했다.

"오늘은 뭘 건드려서 그 꼴이야?"

덕지덕지 묻은 검은 기름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로 희고 깨끗한 피부를, 지긋하게 봤던 낡은 점퍼로 가리는 희누에게 물었다. 언제 봐도 아슬아슬한 복장이다. 일단 벗은 여자애를 준비한다. 거기에 큼지막한 멜빵 청바지를 입힌다. 이상한 장갑을 끼운다. 낡은 운동화를 신긴다.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틀어 묶어준다. 거기에 낡은 가죽점퍼를 입히면 희누가 완성된다. 되나? 디테일이 좀 부족한 것 같으면 다시 알몸으로 벗겨서 기름을 끼얹으면 되려나.

뭐, 녀석이 평소에는 저런 야시시한 몰골이기는 해도, 저런 모습으로 당당하게 사람 앞에 나서지는 않는다. 저런 식으로 말투가 칼날처럼 각이 진 주제에 의외로 사람을 피하는데다가 일 할 때는 저 멜빵 청바지 하나만 달랑 걸치는지라 (아 물론 글러브는 장비니까 패스하고, 신발 따위도 기본적으로 넘어가자. 속옷은 위는 안 걸친 게 확실한데 아래는 안 벗겨봐서 모르겠다. 설마 노팬티로 돌아다니는 취미가 있는 건 아니겠지. 집에서는 분명 입고 있긴 했는데.)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일하는 모습은 죽어도 안 보이려고 한다. 기쁘면서도 복잡한 것이, 역시 남자 취급은 안 받는다는 의미겠지. 제길.

희누는 점퍼를 입던 도중에 어깨 즈음에 묻은 검은 오일을 발견하고 물에 젖은 수건으로 쓱쓱 닦으며 답했다.

"그냥, 테디베어를 강화할만한 파츠를 찾다가 그럭저럭 괜찮은 게 발견되어서."

”허어.”

그 살육의 마곰이 또다시 강화되는 건가. 테디베어란, 희누가 취미 삼아서 이 썩어 넘치는 부품의 산을 야금야금 갉아서 정크 파츠들을 이용해 만들어낸 골렘이다. 이 계집애는 전생에 어디서 굴러먹던 녀석인지 궁금할 정도로 천재인지라, 이런 거지 같은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것치고는 어이없을 정도로 터무니없는 파괴력을 지닌 흉악한 흉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런 주제에 이름만큼은 깜찍하기 그지없는지라, 나는 녀석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그 부조리한 작명 센스에 대한 야유를 퍼붓는다.

"쯧쯧, 아주 이 정크샵의 정수를 빨아먹는구나 그 곰탱이는."

"어차피 누구도 안 쓰고 썩어 없어질 거라면 나라도 써주는 편이 낫지 않겠어?"

"그렇게 부품 빼 쓰는 거, 주인영감에게 허락은 맡았냐?"

"당연하지. 내가 누구랑 같은 줄 알아?"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주인영감도 이 녀석이 만들어 낸 것이 어떤 녀석인지 알아차린다면 절대로 이런 허락은 해 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 영감은 눈이 워낙 떡이 되어서리, 직접 눈앞에 뵈여줘도 모를 것이다.

영감이 가지고 있던 기술은 상당했고, 실제로 우리가 가진 기술의 상당부분은 그 영감에게 시사 받은 것이지만, 튜너가 눈이 망가져서야 간판 내리는 수밖에 없다. 지금의 주인영감은 거의 장님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걸 허락해 버리다니. 설마 영감, 우리가 잡동사니와 ‘졸업품’을 구분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 거고… 영감도 이제 힘이 빠졌구만.

난 인생의 허무를 느꼈다. 세월은 흐르고, 강한 것은 꺾인다. 먼 옛날, 아직 희누가 이 일을 배우기 시작하기 전의 추억을 조금 떠올려보았다. 그때는 ‘졸업품’을 분해하려다가 신나게 얻어맞았는데 말이지.

왕년에 잘 나가지 않았던 사람이 어디 있었겠는가. 그리고, 그 사람들이 숨 쉬고 살아가는 이곳은 어떨까? 이곳은 지금이야 조용한 마을이 되었지만, 이곳은 한 때 꿈을 찾아 여행을 떠나고, 자신의 운을 시험하고 운만으로 부족한 부분을 노력으로 메꿔낸 트레져 헌터들의 도시. 더블 웨스트다. 이곳은 자신의 운을 믿으며, 한편으로는 망설이지 않고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이며, 작게는 과거의 영광, 크게는 그 과거의 영광에서 찾아낸 새로운 지식으로 인류의 미래를 열기 위해 모험하던 진짜 모험가들의 도시였다. …아니, 도시라는 것은 정정. 깡촌이겠지. 별로 멋이 없어지는구먼.

어쨌든 그런 모험가들의 동반자라면 뭐니뭐니해도 역시 골렘이다. 마나 제너레이터로 구동 되는 그들은, 먼 과거에는 전쟁을 위한 파괴병기였지만 지금은 새 시대를 열어가는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인류의 멋진 친구다.

그래, 여기 이 정크샵에도 그 인류의 친구님들의 잔해 찌끄러기들이 오라지게 널부라져 깔려있지. 여기저기 시체마냥 까마득하게 쌓여 있다. 여기만 보더라도 정말로 이 서부가 헌터들의 보물창고였다는 것을 사무치게 느낄 수 있다. 가끔 생각할 때마다 여기가 무덤인가 싶기도 할 정도다. 헌터들은 자신들이 가다 주운 어지간한 기계 파츠는 죄다 여기다 처 버렸다고 한다. 만약 그 파츠 중에서 유용한 것이 있었다면 이곳의 주인장이 알아서 뽑아 다시 넘겨준 듯하고.

헌터들과 이 정크샵은 거 뭐라고 할까. 신용관계라고나 할까. 이 마을 자체가 그들의 낭만으로 세워진 곳인 만큼 그들 간의 유대는 장사꾼과 손님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무리 이곳 영감이 신용이 있고, 소신껏 좋은 파츠를 뽑아준다고 해도, 영감은 한 명이고 무수한 헌터들이 쏟아 붓고 가는 기체들은 그야말로 아찔하게 많았으니… 그 결과가 이 엄청난 스케일의 골렘 무덤이다. 그 덕분에 아직도 열심히 찾으면 어이없을 정도로 훌륭한 부품이 툭툭 나와준다. 완전 깡촌이 된 더블 웨스트의 정크샵이 그런 보물 창고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겠지.

좌우지간 이 정크샵이 얼마나 어이없는 곳이냐 하면… 다신 이 바닥에 안 들어올 은퇴자들은 그의 골렘을 필요 없다는데도 대충 여기다 떠넘기고 째 버리는 것이 서부 토박이 헌터식 은퇴 행사였다고 한다. 졸업식이라며 그렇게 끝낸 헌터는 그들 나름대로 상당한 영예를 얻었다고 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변변찮은 피라미들의 기체는 받아주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고 한다. 그런 녀석들은 아예 이곳에 억지로 헐값에 넘겨버렸다나 뭐라나. 세상에, 돈을 받지 않고 공짜로 자신과 함께하던 애기를 떠넘기는 것이 영광이고 그걸 못 하면 떨이로라도 처 넘기다니, 도저히 마음으로는 이해해도 머리로는 이해 못 할 일이다.

좌우지간 그런 헌터들이 싹 빠져나간 지금, 헌터들의 졸업장소이자 그들의 가장 최고의 동료이자 전우였던 기체들의 무덤인 이곳이 얼마나 혼잡스럽고도 아찔하게 되었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알 것 같지 않은가. 더군다나 슬슬 서부 붐이 시들해질 무렵, 이미 주인영감은 상당히 늙었고 그 아들이 혼자 이곳을 떠맡게 되었는데…. 주인영감이야, 이 영감이 기억력 하나는 기가 막히게 좋아서리, 헌터들이 파내서 맡긴 녀석들과 졸업품으로써 맡은 것의 데이터를 죄다 머리로 꿰고 있었다고 한다. 실제로 정크샵 관리를 배울 때, 이건 누구의 무슨 골렘이고 저건 누가 언제 가지고 온 거라는 둥, 들어도 절대 기억하지 못할 이야기를 잔뜩 들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지식은 다른 이에게 전달해 주기에는 너무나 방대하고 막연했다. 외워 볼 시도도 안 하고 포기해버린 나와는 다르게, 이미 죽은 주인아저씨(영감 말고, 아저씨. 영감 아들 말이다.)는 그 정보들을 정말 기를 쓰고 외우려고 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에겐 시간이 얼마 없었다. 곧 병이 나서 죽어버린 것이다. 덕분에 우리 오누이가 이 정크샵에서 일을 하게 되기 전에는, 자식놈 멀쩡히 키워다가 이제 그 자식이 손자만 보여주면 인생에 더 바랄 것이 없었을 노인장이 또다시 현장에 복귀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뭐, 어디에 쌓인 몇 번째 기체가 어떤 이가 몇 번째에 와서 두고 갔던 어떤 녀석이고, 저건 누가 파서 조사해달라고 맡겼는데 하기도 전에 은퇴해버려서 갈 곳을 잃은 놈, 저건 뭐에 무슨 부품을 파서 잠깐 쓰고 나서 수리 안 해준 놈, 저쪽에 있는 컨테이너는 누가 대박이랍시고 건져왔지만 쓰고 나서 필요 없는 몇 개는 조사도 안 하고 주인장에게 생일 선물이랍시고 준 녀석, 저놈은 어떤 애송이가 헌터가 되겠답시고 무작정 서부로 상경해서 운이 없었는지 별거 못 건지고 고향으로 돌아갈 때 헐값에 넘긴 거… 기타 등등을 깡그리 머리에 꿰고 있는 주인영감도 이제는 나이가 나이인 만큼 당장 고꾸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지경이다. 주인영감뿐만이 아니라, 이 정크샵도 한 십 년 전 정도까지만 해도 은퇴했던 헌터들이 자신의 애기와 함께 과거를 추억하기 위해 어슬렁거렸던 모양이지만, 지금은 그렇게 오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런 영감인 만큼 자신의 추억과 그들과의 추억, 아들과의 추억이 여린 이곳을 소중하게 보존하고 싶어했었고, 그 덕분에 난 기술에는 전혀 도움도 안 되는 쓸데없는 지식을 외우라는 성화를 들었어야 했지만… 희누에게 당당하게 떨어진 분해 허가를 보니, 노인장도 슬슬 옛 추억이 덧없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그 노인네도 갈 때가 다 되었나. 슬프구만. 그때였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뭘 그리 뚫어져라 보는 거야.”

희누가 나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난 생각에 빠지면서 희누를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방금 같은 우울한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떠넘길 정도로 나쁜 녀석은 아니다. 대충 둘러대기로 하자.

“당연히 묻었지. 기름 투성이야.”

희누는 자신의 얼굴을 파워 글러브로 슥슥 닦으며 말했다.

“그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뭘 그리 새삼스럽게 보냐?”

아, 언제 봐도 멋진 글러브다. 저 파워 글러브도 주인을 조금 더 잘 만났으면 유물로서의 대접 고스란히 다 받으며 편하게 지냈을 텐데, 어린 애 장난감이 되어서 저 꼴이구먼.

좌우지간 이런 혼란의 극치를 달리는 이 정크샵의, 지금 대의 실질적인 관리자는 나다. 주인영감이 우리 영감과 친분이 있었던 터라, 아직 그가 눈이 멀쩡하던 당시에 이것저것을 배운 덕분에 내 실력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내 꿈은 우리 영감처럼 트레져 헌터가 되는 것이었다. 헌터라면 역시 뭐니뭐니해도 골렘 아니겠는가. 골렘 뜯어고치는 법을 배우면 언젠가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난 정말로 열심히 배웠고 부족한 부분은 스스로 독학까지 했었다. 그 결과가 이거지만. 우리 영감이 죽고 이곳의 주인영감도 눈이 거의 완전히 가버리고, 겸사겸사 아들인 아저씨까지 죽어버린 덕분에 명목상 아르바이트생이자 실질적인 관리자로서 발이 묶여버리고 말았다. 사실 희누의 저 기계 다루는 기술도 내가 가르쳐준 거다. 청출어람 당하긴 했지만.

-꾸우욱

“컥, 아파.”

잠시 멍해 있는 사이에, 하필이면 자기 생각을 할 때 남의 이마를 스패너 끝으로 찍어오는 희누. 저 녀석은 내가 자기 친구들(골렘)과 맞먹는 내구력을 지녔다고 착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망할 것.



by 달지않은고구마 | 2005/12/27 07:47 |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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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유피테르 at 2005/12/27 11:18
아아아아 뭐랄까 오랜만에 희누를 보니까 벅차오르는 감정을 가눌수가 없는게 만세만세 희누 만세(..)
으음, 뭐 한번 읽었던거니까 꽤나 빨리 읽히는군요. 쪼매 다른 부분이 있긴 한것 같지만요.
Commented at 2005/12/27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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