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유령金屬幽靈 -15- (Story 4, 디스텔)

금속유령金屬幽靈 -1- (프롤로그)
금속유령金屬幽靈 -2- (Story 1, 희누)
금속유령金屬幽靈 -3- (Story 1, 희누)
금속유령金屬幽靈 -4- (Story 1, 희누)
금속유령金屬幽靈 -5- (Story 1, 희누)
금속유령金屬幽靈 -6- (Story 1, 희누)
금속유령金屬幽靈 -7- (Story 2, 율령)
금속유령金屬幽靈 -8- (Story 2, 율령)
금속유령金屬幽靈 -9- (Story 2, 율령)
금속유령金屬幽靈 -10- (Story 2, 율령)
금속유령金屬幽靈 -11- (Story 3, 산시)
금속유령金屬幽靈 -12- (Story 3, 산시)
금속유령金屬幽靈 -13- (Story 3, 산시)
금속유령金屬幽靈 -14- (Story 4, 디스텔)







지금의 디스텔에겐, 방금 전 내 몸을 투명하게 통과하던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질감이 있었다. 감촉, 부드러움, 존재감. 나는 팔로 지탱하며, 디스텔과 몸을 붙이지 않도록 최대한 몸을 일으켰다. 내 눈앞에서 너무나 가깝게 소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희누보다는 조금 성숙해 보이지만, 그런 미약한 성숙함은 이 소녀의 소녀다움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었다. 율령의 그것과는 다르다. 가냘퍼보인다. 흰 머리카락, 흰 피부, 붉은 눈동자. 그런 것 역시 일반적으로 살아있는 인간과는 많이 다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지금 자신에게 깔려있는 소녀와 같은 인간을 단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나는 소녀의 흩어진 머리카락을 쥐어보았다. 매끄러운 감촉이 분명히 느껴졌다. 머리카락이 희다. 저건 보통 노인들이 살아가며 색을 잃은 세월의 흰 머리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결여되었던 것과 잃어버린 것은 너무나 차이가 난다.

나는 소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일반적인 적색과 피의 색은 다르다.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그저 붉기만 한 사과와 피의 색을 구분 못할 수가 없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피를 보고, 또 살아가면서 피를 본다. 생명이 남에게 피를 보인다는 것은 손상을 의미하고, 결과적으로 죽음을 의미한다. 눈앞의 소녀는 눈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얼마든지 자신의 혈액을 남에게 보일 수 있었다. 소녀의 붉고 투명한 눈동자가, 삶이라는 허울 너머의 죽음을 적나라하게 들어낸 것처럼 보였다.

나는 이번에는 소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소녀에게선 체온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하게 만져지는데도 체온은 없었다. 나는 소녀의 얼굴에 귀를 가져다 댔다. 역시 소녀는 숨을 쉬고 있지 않았다. 나는 복잡한 심정으로 소녀의 몸을 기어 내려갔다. 그리고서 방금의 소녀가 나에게 그리 했듯이, 소녀의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댔다. 느껴지는 것은 미약한 푹신함 뿐, 살아있는 인간이라면 응당 들려와야 할 심장 소리가 없었다. 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지만,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없는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 확인하기 전부터 결론은 이미 나 있었던 것이다. 나는 스스로 낸 결론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입 밖으로 내뱉었다.

“유령…인가?”

눈앞의 소녀는 말 그대로 유령이었다. 체온이 없다. 숨도 쉬지 않는다. 심장 박동도 느껴지지 않는다. 외모도 인간의 것과는 다르다. 몸을 일으켜서, 그녀를 안아 일으켰다. 소녀는 너무나도 가벼웠다. 마치 속이 비어있는 것 같았다. 소녀는 나에게 몸을 맡긴 채, 내게 물었다.

“난 유령이야?”

난 이 소녀에게 유령이라고 밖에 답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난 이 소녀에게 너는 유령이라고 말해줄 수는 없었다. 이 아이는 죽은 아이라는 건가. 복잡한 심정의 나에게 디스텔이 연이여 같은 질문을 해왔다.

“난 디스텔. 디스텔은 유령이야?”

하얀 소녀의 어조는 조용했으나, 그 조용한 어조는 어쩐지 망가진 로봇이 필사적으로 움직이려는 모습과 닮아있었다. 크게 소리치고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데도, 디스텔은 조용하게 말하는 것 말고는 알지 못하는 듯 했다. 나는 그런 소녀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 모든 상황이 너무나 당황스럽고 낮설었다. 생각해도 나올 것은 없었다. 누구도 답을 가르쳐 줄 수는 없었다. 나는 일단 머리를 비우고 입을 움직이기로 했다.

“체온이 없어. 호흡도 없어. 그리고 심장 박동이 없어. 몸이 너무 가벼워. 체온 없는 인간은 없고, 심장이 뛰지 않는 인간도 없어.”

“그럼 난 유령이야?”

문뜩 난 내 자신이 겁에 질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몸이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공포심은 유령을 접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난 이 소녀에 대해서는, 유령이건 인간이건 관계가 없는 동정심을 느끼고 있었다. 책임감이라고 해도 좋았다. 난 이 소녀를 발견해버렸다.

그래서 난 두려워 하고 있었다. 지금의 소녀는 갓 깨어나서, 세계를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소녀의 질문 ‘난 유령이야?’는, 그 받아들이는 과정의 하나였다. 여기서 내가 ‘넌 유령이고, 죽은 존재야.’라고 고한다면, 이 소녀는 그 사실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서 진짜 죽은 존재가 되어버릴 거라는 사실을 난 알 수 있었다. 죽는다는 것은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 소녀는 사라진다. 나의 예지가 고하고 있었다.

그래서 난 애매한 답 말고는 해줄 수가 없었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안이한 대답이다. 회피다. 하지만, 나는 이 순간을 회피할 수밖에 없었다. 디스텔은 나의 대답을 듣고서 의문을 표했다. 왜 너는 나에게 답을 주지 않는 거지? 언제나 타의에 의해서 답을 얻던 이 소녀에게, 지금과 같은 상황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난 답할 수 없었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하얀 소녀는 지금 고뇌하고 있었다. 도구로서 존재하던 자신을 넘어선 다른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 스스로 판단을 내려, 새로 태어난 이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

디스텔은 내 손을 낚아채서 자신의 뺨으로 가져갔다. 방금 전까지 내 손이 머무르던 곳이긴 했지만, 지금은 내 의지가 아닌 타의에 의해서 닿게 되었다. 나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뭐 하는 거야?”

소녀는 내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다만 그녀는 무언가 필사적이었다. 여전히 소녀의 볼에서 체온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죽음을 거부하는 시한부 환자의 투병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무척 익숙한 것이었다. 늘 침대 위에 앉아있던 아픈 소녀가 있었으니까.

물론 여기 있는 이 하얀 소녀, 디스텔은 그때의 희누와는 다르다. 키는 지금의 희누 보다도 조금 크고, 몸도 조금은 더 성숙하다. 눈도 붉고 머리카락도 하얗고 피부도 그렇다. 하지만, 눈 앞의 소녀는 아직 소녀였다. 나는 도저히 이 소녀를 외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필사적인 소녀의 모습을 망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는 무언가를 노력하고 있었다. 마치 노력하면 된다는 듯이. 무엇을 노력하고 있는 것일까. 소녀의 아무런 체온도 느껴지지 않는 뺨에 닿아있는 내 손을 떠올린다. 그래, 체온인가. 이 아이는 살아있는 것으로 인정 받기 위해서 체온을 원하고 있었다. 나도 소녀의 체온을 기원하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디스텔의 뺨에 닿아있던 나의 손에서 미약한 온기가 느껴졌다. 아직은 차가웠지만, 그것은 분명 미약하나마 체온이라 부를 수 있는 온기였다. 나는 기가 막힌 어조로, 하지만 얼굴은 살짝 웃음지으며 말했다.

“너, 확실히 조금은 따듯해졌어. 굉장한데.”

“응.”

디스텔은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의 볼에 머무르게 하고 있던 내 손을 자신의 왼쪽 가슴으로 가져갔다. 하얀 파일럿 슈트 너머로 뭉클한 촉감이 느껴지긴 했지만, 다른 잡생각은 들지 않았다. 나는 그저 필사적으로 기원했다. 조용히 소녀의 심장박동을 느끼기 위해서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그녀의 가슴에서 약한 고동이 느껴졌다.

“…과연, 이제 심장도 뛴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눈 앞의 이 소녀는, 지금 태어나고 있었다. 마치 알에서 막 깨어난 병아리처럼.

이제 디스텔은 나에게 팔을 뻗었다. 나는 생각했다. 이 소녀가 알에서 막 깨어난 병아리라면, 나는 그 병아리가 처음으로 본 존재였다. 나는 소녀를 안아 올렸다. 인간치고는 너무나 가벼웠지만, 난 이 아이가 점차 무거워지고 숨을 쉬게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나는 그렇게 콕피트의 가장자리에 걸터 앉아서, 소녀를 안고 있었다. 소녀의 얼굴은 나의 얼굴과 거의 밀착한 상태였다. 하지만, 우리가 하려는 것은 연인의 키스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이 소녀를 함께 태어나게 하고 있었다. 소녀는 껍질을 깨기 위해 발버둥치고, 나는 밖에서 그 껍질을 부수는 것을 도왔다. 서서히 소녀의 무게가 실체감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녀의 얼굴에 인접한 나의 목으로 소녀의 호흡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쩐지 피곤했다. 이제 디스텔은 인간처럼 숨쉬고, 심장이 뛰고, 따스하고, 무게도 있다. 그렇다면 이 아이는 살아있는 것일까.

자신을 디스텔이라 칭한 하얀 소녀는 나에게 머리를 기댔다. 눈을 감고서 나지막이 숨을 쉬는 것이, 잠이 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자신에게 안긴 소녀의 몸을 느끼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 좁은 컨테이너에서 바라볼 수 있는 먼 곳은 없었다. 여기에는 그저 이 이름 모를 골렘 뿐이었다.

그때, 나는 문뜩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막연히 발견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던, 그 명함은 그곳에 있었다.

이쿠로모담 / 이쿠로모담 플레인

코드 이쿠로모담, 명칭은 이쿠로모담 플레인인가. 코드와 명칭이 동일하다니, 이런 녀석은 본 적이 없다. 코드는 일종의 병과를 의미하고, 명칭은 그 기체의 고유적인 특질을 의미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녀석의 명찰에 있는 ‘이쿠로모담’이라는 코드는, 오직 이 녀석만을 위해서 생겨나서 존재하는 코드인 셈이다.

“어처구니 없는 기체로군. 하지만, 뭐… 상관 없지 않나.”

뭐가 어쨌던간에, 플레인이라니. 어쩐지 디스텔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명칭이었다. 나는 디스텔을 등에 업고서 이쿠로모담의 콕피트에서 내려왔다. 나와 디스텔이 나오자, 콕피트는 서서히 자동으로 닫혔다.

나는 그 모습이 어딘지 주인이 떠난 관처럼 느껴졌다. 말없이 우리를 배웅하는 금속 거인을 뒤로 하고서, 나는 컨테이너를 떠났다.










잠시 후, 정크샵 관리실.

흑발의 작은 소녀가 검은 눈동자로 나를 직시하고 있었다. 난 필사적으로 눈을 피했지만, 소녀의 시선은 여전히 푹푹 박히고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소녀가 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나의 어깨 너머에 있는 디스텔의 얼굴이겠지만.

희누는 자신의 무릎 위에 턱을 괴었다. 헐렁한 맬빵 청바지의 한쪽 맬빵이 어깨 아래로 미끄러졌지만, 당연히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저 희누는 가만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의 목 울대가 긴장으로 인해서 꿈틀거렸지만, 희누의 눈초리는 나날이 더 날카로워 질 뿐이었다. 나는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저기요?”

그 순간 희누로부터 정신적으로 쿠앙! 하는 느낌이 왔다. 순식간에 뿜어지는 기세와 존재감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상태가 되어서, 마치 거대한 망치처럼 내 전신의 긴장을 툭툭 끊어버렸다. 의도하고 한 것이라면, 실로 무서운 능력이었다.

"그래서 나보고 뭘 어쩌라고?”

“아니, 그러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황송하옵게도 귀하의 귀하신 의견을 기탄 없이 내려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라는 거지. 아니, 겁니다. 네네.”

“….”

-콰지직.

희누는 어느새 꺼내두었던 맥주 캔을 이로 뜯었다. 그 광경을 보는 나의 턱이 아래로 내려갔다. 침이 흘러나올지언정, 저 광경을 보고서 경악을 표현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희누가 맥주 마시면 기겁을 하는 령이네 아저씨가 가르쳐줬을 리는 없고, 저 기괴한 음주 테크닉은 녀석의 독학이라는 이야기다. 진짜 독학할 게 없어서 저런걸 익히냐. 저 미친 계집애. 어쨌든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캔맥주를 이로 따버리는 그 모습은 정말로 끔찍할 정도로 무시무시했다.



by 달지않은고구마 | 2006/01/02 08:56 |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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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6/01/02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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