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유령金屬幽靈 -18- (Story 4, 디스텔)

금속유령金屬幽靈 -1- (프롤로그)
금속유령金屬幽靈 -2- (Story 1, 희누)
금속유령金屬幽靈 -3- (Story 1, 희누)
금속유령金屬幽靈 -4- (Story 1, 희누)
금속유령金屬幽靈 -5- (Story 1, 희누)
금속유령金屬幽靈 -6- (Story 1, 희누)
금속유령金屬幽靈 -7- (Story 2, 율령)
금속유령金屬幽靈 -8- (Story 2, 율령)
금속유령金屬幽靈 -9- (Story 2, 율령)
금속유령金屬幽靈 -10- (Story 2, 율령)
금속유령金屬幽靈 -11- (Story 3, 산시)
금속유령金屬幽靈 -12- (Story 3, 산시)
금속유령金屬幽靈 -13- (Story 3, 산시)
금속유령金屬幽靈 -14- (Story 4, 디스텔)
금속유령金屬幽靈 -15- (Story 4, 디스텔)
금속유령金屬幽靈 -16- (Story 4, 디스텔)
금속유령金屬幽靈 -17- (Story 4, 디스텔)





난 희누에게 다가가서 매달려있는 디스텔의 목덜미를 붙잡아 들어올렸다. 그러자 디스텔은 순순히 희누에게서 떨어졌다. 디스텔이 떨어지자 희누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희누는 허겁지겁 가죽점퍼를 입었다. 그리고는 방금의 발버둥으로 흐트러진 머리 등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얼굴은 아직 좀 굳어있지만, 희누 나름대로 태연하게 보이기 위해서 노력하는 거다. 난 애써 모른척하며 희누에게 물었다.

“그 점퍼, 안 끈적해?”

“마르니까 뭐. 그것보다도, 도대체 왜 유령 같은 게 갑자기 나오는 건데?”

“아니 뭐, 나도 잘 모르지.”

디스텔은 여전히 별다른 표정의 변화도 없이, 내 손에 들린 채로 희누를 바라보았다. 희누는 손으로 십자가를 만들며 최대한 뒤로 물러섰다. 난 디스텔의 눈을 가리면서 말했다.

“희누. 그래도 얜 일단은 무해하잖아. 너무 그렇게 무서워 하지 마.”

“무해하다니, 얼마나 차가웠는데! 게다가 착 달라붙어서 떨어지지도 않고, 이게 바로 유령에 씌인다는 것인가 하고 얼마나 놀랐는데!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남의 불행을 쉽게도 말하는구나.”

희누는 자신이 입은 점퍼의 등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역시 알몸에 멜빵 청바지 하나만 꼴랑 입고 있다 보니, 등쪽은 거의 노출되어 있는데다가 조금만 더 흘러내리면 엉덩이까지 들어날 지경이었다. 난 희누의 매끄러운 등선을 바라보며 말했다.

“만악의 근원은 네 부실한 복장이구나.”

“그럴리 없잖아. 난데없이 유령을 데리고 나타난 오빠쪽이 아무리 생각해도 훨씬 문제야.”

그 순간, 디스텔은 자신의 눈을 가린 내 팔을 들어올렸다. 그녀는 계속해서 희누를 응시하고 있었다. 희누는 또다시 양팔로 십자가를 만들어 보이며 뒷걸음질 쳤다.

“나, 나한테 뭐 불만이라도?”

“유령이 아니라 디스텔.”

“알았어. 디스텔. 그러니까 너무 나에게 관심 주지 말아줘. 응? 저기 저 바보에게 붙으라고. 어차피 우린 초면이잖아. 스처가는 인연이야.”

“뭘 그리 정중하게 타이르냐.”

지금의 희누는 언뜻 보기엔 진정한 것 같아도, 아직 내면은 패닉 상태인 것 같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디스텔의 뺨을 만져봤다. 역시 이건 좀 심하게 차가웠다. 이런게 맨 등에 달라붙으면 확실히 놀랄만 하겠는걸.

“디스텔, 지금은 왜 이렇게 차가운거야? 아깐 좀 미지근 했던 것 같은데.”

“차가우면 진정이 되니까.”

그 말을 들은 희누는 손을 휘휘 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 마음은 확실히 이해가 간다. 희누의 입장에서는 진정은커녕 더 놀랐던 것 같으니까. 나는 공기처럼 가벼운 디스텔을 천천히 흔들면서 말했다.

“체온을 바꿀 수 있는 거야?”

“노력하면. 올리기가 더 어려워.”

“…그런 유령도 있냐.”

“유령이라 하지 말고 디스텔.”

“그런 디스텔도 있냐. 이건 말이 좀 이상하잖아?”

“과연.”

천천히 흔들리면서 말하는 디스텔의 목소리는, 규칙적으로 내 귀로부터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면서 도플러 효과를 발생시켰다. 웅얼웅얼. 어조는 조금의 변화도 없었지만, 인공적으로 다른 어조를 만들 수 있어서 재미가 있었다. 디스텔의 반응은 뭐랄까, 기복이 없었다. 흐르는 강물에 혼자 박힌 돌기둥 같은 느낌이랄까.

갑자기 디스텔의 무게가 늘어나기 시작해서 나는 디스텔의 목덜미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아버렸다. 체중도 체온도 늘였다 줄였다, 제 맘대로구만. 나는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느긋하게 어이없어 할 때는 아니었다.

디스텔은 희누에게 다가갔다. 나는 디스텔을 만류하려고 했지만, 디스텔은 그런 나를 제지했다. 희누는 굳은 표정으로 팔로 만든 십자가를 최대한 디스텔에게 뻗었다. 저러면 디스텔이 사라지기라도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희누.”

“뭐, 뭐야.”

“놀랐어?”

디스텔은 희누의 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그대로 와락 안아버렸다. 아무래도 저 안아버리는건 디스텔의 버릇이 아닐까. 나는 아까 골렘의 콕피트에서 일어났던 일을 떠올리고서 볼을 긁었다. 한편, 희누는 디스텔이 덮쳐오자 그대로 도망가려는 시도를 했지만, 디스텔쪽이 좀 더 빨랐다. 하지만, 희누는 이번 만큼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얼레, 이번엔 따듯하네. 뭔 놈의 유령이 변온 동물인 양 체온을 바꿔대는건데?”

“변온 동물이라고 체온을 막 바꾸는 줄 아냐.”

희누는 나의 테클을 무시했다. 뭐랄까, 처음 먹어보는 음식을 곰곰이 씹어보는 느낌이었다. 령이네 아저씨가 새 음식을 대접할 때마다 종종 볼 수 있는 표정이다. 희누는 그대로 디스텔의 몸을 더듬었다.

“오빠, 얘 이제 따듯해.”

“그런 것 같아.”

“유령 맞아?”

“…유령이 아니라 디스텔이라는데.”

“얜 어디서 나왔는데?”

아마도 희누는 ‘몸이 따듯하다 = 살아있다.’라는 묘한 공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긴, 원래부터 미지근한 것을 무진장 좋아하는 녀석이기도 하고. 희누는 디스텔을 곰인형 안듯…이 아니라, 산시 안듯이 껴안았다. 몸을 녹이려는 걸까. 적응력을 논해야 할지, 트라우마도 상황에 따라 씹어버리는 저 두꺼운 신경을 논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좋은게 좋은거니까 넘어가도 되려나 모르겠다. 결국 내 자신도 뭘 어째야 할지 모른다는 거다. 조용하니까 그냥 내버려두긴 하겠지만.

“그 컨테이너 안의 골렘의 콕피트에서 나왔지. 아 맞아, 그 골렘 명함을 찾았는데, 코드 이쿠로모담에 명칭이 이쿠로모담 플레인이더군.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어?”

“켁, 오직 그 기체를 위한 코드라는거야?”

희누는 돌이라도 씹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코드란, 해당 골렘의 탄생 목적과 사용처, 일종의 병과를 의미한다. 명칭은 말 그대로 그 골렘을 특징하는 명칭. 하지만, 코드와 명칭이 동일한 것이라면? 해당 기체는 오직 그 기체만의 특징을 위해서 제작된 녀석이라는 의미가 된다. 그 때, 디스텔이 말했다.

“이쿠로모담은 특별한 기체야. 하늘을 나는 죽음의 관, 편의를 위해 버려진 인도, 데스 드레스, 예비 무덤, 지옥의 저울추, 죽음의 두 날개의 요정. 그 중에서도 플레인은 프로토 타입이야.”

희누와 나는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험악한 칭호들에 놀라서 디스텔을 바라보았다. 디스텔은 여전히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희누를 안고 있었다. 희누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명을 지르고 무서워 하던 상대가, 그저 체온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두려움이 가셨는지, 아니면 궁금증이 그런 공포를 누른 것인지, 디스텔에게 물었다.

“뭔가 칭호들이 장난이 아니네. 대체 어떤 기체야?”

“군사기밀.”

“….”

희누는 눈을 가늘게 떴고,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군사기밀이라, 무엇을 위한 기밀일까. 나는 조용해진 디스텔을 잠시 내버려두고, 희누에게 속삭였다. 물론 다 들리겠지만, 어디까지나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다.

“희누, 디스텔이 유령이라는 판단에 이견이 있어?”

“정보 부족이야. 내가 디스텔 이외의 유령을 만나봤어야지.”

‘디스텔 이외의 유령을’ 부분에서 이미 답은 나왔군. 디스텔은 아마도 유령이라고 생각된다. 그 근거는 대부분 불확실하고, 우리는 유령에 대한 정의조차 없지만, 저 디스텔은 최소한 유령의 친구 비스므레한 정도는 되지 않을까.

“디스텔, 넌 너 자신이 뭐라고 생각해?”

희누가 디스텔에게 물었다. 엄청나게 직접적이다. 이래서야 속닥속닥 흉내를 낸 내가 바보같아지는군. 디스텔은 눈을 깜빡이며 곰곰히 고민에 잠겼다. 그리고는 우리 오누이 양측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유령의 구체적인 정의를 입력해줘.”

“그걸 알면 우리가 판단하지.”

“내 말이.”

난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고, 희누는 옆으로 묶은 검은 머리칼을 흔들흔들 흔들면서 맞장구를 쳤다. 정말 골치 아픈 문제로군. 어쨌든 지금의 디스텔이 보통의 인간과는 까마득하게 다른 존재라는 것은 확실하다. 보통의 인간은커녕 현실의 물리법칙조차 무시하는 것 같은데. 그때 디스텔이 말했다. 평소의 잔잔한 태도와는 다르게, 어딘지 살아있는 느낌이 와 닿는 말투였다.

“난 디스텔. 이거면 안 되는거야? 인공 파일럿 카트리지를 고유명사가 아닌 다른 것으로 칭해도 별 의미가 없어. 인공 파일럿 카트리지가 고유명사를 받는다는 것은, 그 카트리지의 사용시작을 의미해. 이제 와서 내게 고유명사를 빼려고 해도, 내가 이미 사용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어.”

말의 내용이야 어쨌든 나나 희누의 입장에서는 디스텔이 이렇게 긴 말을 하는 것은 처음 들었다. 어딘지 박수라도 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런데 뭐야 그 인공 파일럿 카트리지라는 것은. 나는 희누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고, 희누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디스텔에게 질문했다.

“그 인공 파일럿 카트리지가 뭐야?”

“군사기밀.”

“역시.”

희누는 다시 불만투성이 볼을 부풀렸고, 나는 현 상황에서 더 이상의 진전을 꾀하려면 어느 정도 과거를 덮어주는 아량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by 달지않은고구마 | 2006/01/03 15:55 |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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